지난 14일(목)  100주년 삼성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본교 민족문화연구소 산하 국제한국학센터(ICKS)가 주최한 ‘국제한국학포럼’이 열렸다. 국제 한국학 포럼은 개교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학이 국제화를 통해 양적,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최됐다. 이번 포럼은 △국제교류재단 △하나은행 △동아일보 △한국 학술 진흥재단에서 후원했다.

김흥규 민족문화연구소 소장(문과대 국어국문학과)은 한국학의 과제로 △한국학 연구에 대한 도서자원의 부족 △한국학에 대한 국제적 정보 소통 및 연구협력의 부족 △한국학 육성을 위한 재정의 부족을 꼽았다.

김 교수는 미국이 일본에 비해서 한국에 대해 소극적이었다고 평했다.

김 교수는 “하버드 대학과 워싱턴 대학, U.C.버클리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교(UCLA)가 한국 도서 자료 수집에 비교적 충실했지만, 1980년대 이후에 한국학 프로그램을 시작한 미국대학은 한국학 도서의 양과 질 모두 빈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유럽, 캐나다, 호주, 중국 및 러시아 지역의 한국학 관련 도서 상황이 이런 미국의 평균치에 훨씬 못미쳐 이 또한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일반부문 발표에 나선 존 던컨(John B. Duncan, 로스엔젤레스 캘리포니아 한국학 연구소장 ) 교수는 먼저 과거 15년 내지 20년 동안 북미, 유럽, 아시아에서 한국에 관한 학술적 관심이 급속도로 성장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던컨 교수는 “영어권의 학자들이 한국 학자들과 주로 교류하면서  일본이나 제3국가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학자들과의 교류는 적다”며 “한국학에 대한 교류 방식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서대숙 하와이대학 석좌교수는 ‘김정일 체제 하의 북한’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았다. 서교수는 북한에 관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서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김정일 체제 하에서 달라진 북한의 특성을 설명했다.

그는 현 김정일 체제가 과거 김일성 체제와 달라진 점으로 △선군(Military-first) 정책 △남한, 미국과의 관계 △주체사상의 재해석 △경제 개혁을 꼽았다.

서 교수는 “김정일은 과거의 군 역할이 외국의 공격과 내부의 반란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지적하면서 선군정책(당보다 군을 우선시 하는 정책)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그는 김정일 체제에 이르러 김일성이 주장했던 주체사상이 ‘혁명 지도자의 절대적인 지배’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혁명 최고 동지는 단순한 정부의 장이 아니라 국민들과 사회 전체를 통괄하는 지배자로 변한다.

서 교수는 “북한이 주체사상의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영웅을 추앙하는 종교적 국가의 성격을 갖추게 됐다”고 주장했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과)교수는 한국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앞의 질문에 응답자 중 60%이상이 혈통, 핏줄로 답한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신 교수는 “이러한 조사들을 통해 민족주의(nationalism)가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 교수는 “민족주의는 한국의 과거, 근대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다”며 “민족주의는 근대적인 용어이며 사회적, 역사적 사고·개념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세기말, 20세기 초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여 민족주의의 연속을 증명했다.

나아가 신 교수는 1920년대에 일반 지식인들이 한국전통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나 1930년대에 타 민족으로부터의 위협, 혹은 위협에 대한 인식으로 동일한 △혈통 △성격 △문화가 영구불멸의 존재로 찬양받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1930년대 인종적(ethnic)으로 성격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또한 “동화정책, 창씨개명 등 민족에 반하는 일본의 요구에 대한 반동으로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와 갈등을 일으키며 인종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로 변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결론적으로 “인종적 민족주의가 자유주의, 또는 시민사회를 한국에 정착시키는데 방해적 역할을 하고 1945년 이후 남북 양쪽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등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민평갑 (퀸스대학 사회학과)교수는 “기독교의 활발한 포교활동으로 한국인보다 기독교인이라는 점에 유대감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민족주의가 한국인을 규정하는 최우선의 개념일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노대통령이 반일 발언을 한 뒤 지지도가 급상승했다”며 이는 “아직 민족적 의식이 한국인에게 강하게 남아있다는 증거”라고 대답했다.

로버트 버스웰 (Robert E. Buswell,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전 한국학연구소장)교수는 한국불교가 아시아 불교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불교가 중국에 도달한 것은 대략 서기 1세기이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포교된 것은 이로부터 수 백년 후이다. 버스웰 교수는 “당시 중국은 문화적,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불교는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그는 “한국이 불교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단순한 가교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며 한국불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버스웰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한국승려들은 경전을 통해 일본에 불교 뿐 아니라 △한자 △유교 △의학 △건축 △의상디자인 등 깊이 있는 문화를 전달했다.

특히 백제가 일본에 불교문화를 전파하는데 힘을 썼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일본 비구니들이 백제에 와서 불교 연구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록 불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달됐으나 한국 승려들은 단순히 수용에 그치지 않고 불교를 발전시켜 중국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버스웰 교수는 중국에서 이름을 떨친 승려로 의상, 무상, 원측 등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 중 무상은 중국 서남부 지방에서 정중종(淨衆宗)을 일으켰으며 원측의 경전해석은 중국 외에 티벳에도 잘 알려져있다.

그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를 비롯해 13세기까지도 한국이 동아시아 불교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승려 및 역사서를 통해 알 수 있다”며 한국불교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로스 킹 (Ross King,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한국어학과)교수는 전 세계, 특히 북미에서의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의 잘못된 점을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한국학을 전문적인 수준으로 가르치려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 적어도 두 명의 교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대학 내에 두 명의 한국학 교수가 있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며 북미에서의 열악한 한국학 교육실태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킹 교수는 북미에서 왜 한국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교육도 필요하지만, 대부분 한국어 초급강좌만 개설돼 한자교육에 이를 정도로 심도있는 강의는 거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더욱이 한국어 교육을 마친 뒤 한국학을 전공으로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춘 대학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문화된 한국어 교수가 없다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다. 킹 교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부분의 교수들은 영문학을 전공한 한국 유학생”이라며 “이들은 유학 중의 학비를 벌기 위해 언어학을 배워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한국어 강좌 수강생 중 한국계 학생이 많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계 학생이 많을 경우 외국인 학생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한국어 강의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계 학생과 비한국계 학생을 분리하고, 한국계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존 김 (Jone Kim, 키멥대 한국어학과)교수는 “카자흐스탄의 경우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을 국어연구원에서 개발한 급수 시험을 통해 평가하는데, 북미에서는 어떠한 기준으로 이뤄지는갚라고 질문했다.

킹 교수는 이에 대해 “능력평가는 재원, 시간, 전문성이 많이 든다”며 “북미에서의 한국학 교육은 아직 능력평가를 할 만한 단계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