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족주의와 민족문제의 위상'을 주제로 발제자들이 종합토론을 하고 있다.
민족으로서 가능한 온갖 문학활동 가운데 특히 그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인간적 발전이 요구하는 문학이 ‘민족문학’이다. (백낙청 ‘민족문학 개념의 정립을 위해’)

현재 민족단위로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분단체제 극복이다. 민족문학이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인간적 발전’을 요구한다고 할 때 분단의 현실은 민족문학을 존재하게 한다. 또  민족문학은 현실의 과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민족문학 위기론이 나올 만큼 민족문학은 작가와 독자들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광복 60주년을 맞아 과거 민족문학의 이념에 대해 성찰하고, 민족문학의 미래를 짚어보기 위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다시 민족문학을 생각한다’를 주제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관했다.

신승엽 문학평론가는 ‘20세기 민족문학론의 패러다임에 대한 몇 가지 반성’을 주제로 민족문학론의 흐름을 정리했다.

그의 발표에 따르면 최초의 민족문학론은 1920년대에 최남선, 양주동, 김영진, 염상섭 등이 참가한 민족주의 문학론이었다. 민족주의문학론의 발생 배경에 대해서는 △계급문학론에 대한 부정의 논리로써 ‘민족’ 강조 △1910년대 일본에서 대두된 문화적 민족주의의 영향 △20세기 이후 우리 말글로 이루어진 문학의 성장으로 인한 국민문학론 제기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에는 민족문학론보다 계급문학론이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민족문학론은 민족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반면 계급문학론은 ‘계급해방’을 외치며 인류사회 전체의 역사 발전 방향에 대한 시각과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민족문학론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해방직후다. 계급문학론은 외래 사조의 수입에 지나치게 의존해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이해나 논리화가 부족해 1930년대 퇴조한다. 사회주의 문학인들은 계급문학론을 반성하는 한편, 민족문학을 해방 후 국내적 민족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주목했다. 이에 민족문학론은 1930년대 중반 계급문학의 한계인정에서부터 1940년대 임화의 민족문학론에 이르는 것으로 그 흐름을 정리할 수 있다.

해방 직후 민족문학론은 문학이념론으로서의 민족문학론이 보여줄 수 있는 보편적 패러다임을 거의 다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 예로 △민족 단위로서의 발전 담론 △민족의 주체화 △문학과 사회적 실천 과제와의 결합 강조 △보편성과의 결합 상정 (세계문학과의 연관 강조)등을 들 수 있다.

이후 민족문학론이 본격적으로 제출되는 때는 1970년대이다. 4 · 19 이후 새롭게 역사적 생명력을 회복해나가려는 노력은 1974년 백낙청의 민족문학 체계화로 이어진다. 분단 극복이 현 시기 민족운동의 시급한 과제인 만큼 민족문학론은 민족분단의 극복과 이를 위한 민주주의 성취를 민족문학의 과제로 제시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으로 우리사회는 또 한번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문학운동 역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 민족문학론이 제기한 민족문학 기치들은 해방 직후에 전개됐던 민족문학 논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또 이미 쇠상해가고 있는 현실사회주의 진형의 논리들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민족문학은 1990년을 전후하여 생명력을 상실하고 만다.

신승엽 씨는 “민족문학론의 운명이 20세기에 시작해, 20세기로 마감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족문학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나 민족문학론을 되살리기 위한 논의보다는 민족문학을 넘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민족’의 매개 없이 세계시민으로서 사유해 세계문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에 진정석 문학평론가는 “민족문학이 한시적인 역사적 개념으로 출발하고 또 끝날 수 밖에 없겠지만, 분단체제가 끝날 때 까지는 암묵적으로 지속되지 않겠느냐”고 반박했다. 신승엽 씨는 “민족문학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민족문화 대신에 진보적으로 묶어줄 수 있는 개념이 없기 때문일 뿐”이라며 “당장 민족문학을 대체할 만한 개념은 없으나 민족문학에 매이지 않을 때 좀 더 자유로운 문학이 가능해지지 않겠느냐” 고 답했다.

김정환 시인은 “민족이 그 자체로 내용이 되는 시대는 한국에서도 지났다”며 민족문학은 문학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문학론, 즉 문학 평론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앞으로 문학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문학이 다양한 문학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민족의 틀을 넓혀서 문학을 평가해야 한다. 그는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 민족 자체가 아니라 기존의 틀을 지키고자 할 때 민족문학의 위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김명인(인하대 국어교육과)교수는 “민족문학 위기의 중심은 ‘민족적’주제의 소멸이 아니냐”며 “근대 이후의 소설 그자체가 민족문학의 위기를 증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족문학론이 비평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있으나 진지한 성찰, 세계에 대한 질문들이 없는 작품들이 발표되는 현실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병훈(연세대 의대) 교수는 1990년대 들어 민족문학이 특유의 역동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새로운 시대의 정신과 감수성을 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족문학론은 새로운 문학적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분단체제의 밑그림을 도한하는데 몰두했다"며 민족문학의 위기 원인을 민족문학의 내재적 방향전환의 부재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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