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유머에 이런 게 있다. “한국 남자가 마누라에게 신형 휴대전화를 사서 목에 걸어주는 이유. ― 소파에 누워 TV 보다가 찬물이 마시고 싶으면 마누라를 불러야 하는데 마누라가 가끔 화장실에 있거나 설거지하느라 남편 목소리를 못 들어서.” 이 유머에는 한국 남자의 게으름에 대한 비꼼도 들어 있지만 여성에 대한 철저한 군림과 무시가 나타나 있어서 자못 씁쓰레하다.  

김주영의 『홍어』를 읽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떠오르는 것이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기’에 대해서이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세영이 어머니, 삼례, 호영이 어머니, 창범이네 등 네 여인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 여인들의 삶은 하나 같이 비정상적이고 남성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

세영이 어머니는 남편이 춘일옥 주인 마누라와 바람 피우다 가출해 버리는 바람에, 6년째 생과부로 살고 있다. 열세 살 먹은 세영이를 데리고 태백산 남쪽 막바지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에서 삯바느질로 연명하고 있다. 삼례는 거렁뱅이 소녀로 이런 세영이네 집에 도둑처럼 찾아든다. 그리고 세영이 어머니의 일손을 도우며 살아가다 말없이 사라진다. 삼례는 세영이네 집을 떠나 술집 작부가 되었다. 호영이 어머니는 눈 쌓인 어느 날 어린 호영이를 업고 찾아든다. 막차를 놓쳐 잠시 쉬어가겠다더니 호영이를 맡겨두고 돌아오지 않는다. 창범이네는 전쟁 미망인으로 세영이 어머니의 일을 돕는데 어릴 때 중이염을 앓아 귀가 조금 먹었다. 삼례는 자전거포 남자와 눈이 맞았고, 창범이네는 세영이의 옆집 남자와 눈이 맞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세영이 어머니는 자기를 무시하고, 자기를 배반한 남편이지만, “수천만 리 밖에 떨어져 있다는 눈도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 집을 찾아오는데, 느그 아부지는 눈조차 멀어 장님이 된 지 오래된 모양이제. 장님이 안됐으면 눈뜨고 나갔던 자기 집을 아직까지 못 찾아낼까.”(133쪽)하며 기다린다. 세영이 어머니는 사시사철 문설주에 ‘홍어’를 매달아 놓았다. ‘홍어’는 달아난 남편의 별명이었다. 그러고 보면 ‘홍어’는 남편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애타게 기다리던 남편이 돌아온 이튿날 아침, 세영이 어머니는 눈밭에 신발을 거꾸로 돌려 신은 발자국만 남긴 채 집을 떠난다.

열세 살 세영이가 작중 화자 구실을 하고 있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세영이 어머니의 가출로 끝난다. 무시당하고 배반당한 세영이 어머니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비로소 스스로 살아보고 싶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뜻이리라. 작가는 그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책을 덮고서도 내내 떠오르는 것은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기’에 대해서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참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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