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신화는 △우주 창조(cosmogony) △신 창조(theogony) △인간 창조(anthropogony)가 그것이다. 우주 창조는 우주천지만물을 만드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주로 우주와 천체를 비롯해서 산천에 거처하는 동식물 등을 일거에 만드는 것을 말한다. 신 창조는 인간으로부터 숭배받아 마땅한 신들을 만들고, 신과 인간의 관계를 계약서를 작성하듯이 제의(祭儀)로 명시하는 신화소의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인간 창조는 흔히 없던 인간을 새삼스러이 만들거나 아니면 어떤 대상을 색다르게 만들어서 인간으로 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우리나라 창세신화는 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것이 드물다. 신화소의 내용에 따라서 특정한 신화소를 다른 이야기의 형태로 변형시켜서 전승하고 있거나 본질은 잊혀진 채 우스개 소리로 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만 무당들이 굿에서 노래로 부르는 구전서사시 가운데 핵심적인 요소를 일관되게 구성하고 있는 것이 있어 우리나라도 세계 창세신화의 소유국으로 등재될 수 있다. 오히려 현재까지 전승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세계적인 희소가치를 지닐 수 있으며 우리의 창세신화가 자랑거리로 될 수 있음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2쌍의 해와 달을 쏘아뜨리는 대별왕의 모습.
무당들이 굿을 하는 데 쓰는 무가(巫歌)에 어째서 이러한 희귀한 창세신화가 전해오는가 아연 실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갑자기 신이 들린 무당들이 과연 원시시대 이래로 창조되고 변형을 거듭한 창세신화의 전승자일 수 있는가 의구심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의문이 있다면 신화나 서사시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창세신화의 주체적인 전승자가 문식(文飾)이 있거나 과거의 기록을 따져서 아는 지식인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다. 기록된 것만, 그것도 일부의 유식한 이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편집된 기록으로는 창세신화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식한 이들의 잠재적인 전승 속에 우리의 고유한 창세신화소가 힘겹게 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창세신화가 모두 40편정도 전해지고 있다. 각 고장마다 전하는 내용이나 전승하는 무가의 실제 굿 현장은 차이가 있다. 함경도는 창세신화가 온전히 전하고 실제로 이 신화를 부르는 굿의 절차가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제주도는 함경도보다 더욱 원초적인 순수성이 있어서 굿의 독립된 절차와 신화적 내용 역시 풍부하게 전승된다. 그러나 함경도는 우주창조와 인간창조가 있음에 견주어서 제주도에는 우주창조와 신 창조는 있으나 인간창조가 없다. 그래서 함경도와 제주도를 합쳐서 이해해야만 우리나라 창세신화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두 지역의 창세신화를 합쳐서 이해하면 창조신이 하늘과 땅을 가르고, 하늘의 해와 달을 만들고, 인간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 다른 신인 외래의 이주자가 나타나 그 세계를 빼앗으려고 한다. 창조신은 이 요청에 응하고 후래신(後來神)과 내기에서 승리하나 후래신의 요청으로 마지막으로 이른 바 꽃 피우기 시합 내기를 한다. 이 시합에서 부당한 속임수를 감행한 후래신이 창조신의 자란 꽃을 훔쳐서 창조신의 세상을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그 결과로 이 세상에 악이나 부정이 만연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주도는 우주를 창조한 신이 본래 하나였는데 그 신인 천상신이 내려와서 지상신과 인연을 맺어서 두 신을 낳았다고 전한다. 그 둘이 곧 창조신과 후래신격인 천상신의 아들 대별왕과 소별왕으로 바뀌고 꽃 피우기 시합을 하여서 이승과 저승을 차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함경도 신화에서 분명하지 않던 이승과 저승의 개념이 분명하고 이 싸움은 천상신이 배분한 명령을 어기는 것으로 되면서 심각한 변질을 겪는다. 만든 세상을 빼앗기는 것과 천상신이 배분한 것을 빼앗기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이처럼 원래의 신화소를 잃고 변질되면서 신 창조까지 곁들여져 있는 것이 제주도의 특징이다. 함경도와 제주도 가운에 무엇인 선행 형태이고 본질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창조의 순서로 보거나 심층적인 뼈대로 보건대 함경도와 제주도는 각기 주된 구실을 한다.

다른 고장에서는 창조신과 후래신의 다툼 신화소만 남아서 원시시대 이래로 이루어진 신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자신할 수 있으며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이 점을 증명하는 것은 요원하지만 이러한 신화소가 전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특히 구전되는 신화소에서 절대적으로 살아남아 있어서 이 신화소의 비교 연구로 이 사실을 증명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몽고를 비롯한 시베리아 일대의 신화, 운남성 소수민족의 창세신화, 일본 본토의 문헌신화, 과거 유구였다가 현재의 오끼나와로 편입된 여러 섬들의 구전신화를 보면 이 신화소의 끈질긴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창세신화는 신화이면서 서사시이다. 신화이기에 신들과 인간의 관계를 명시하면서 인간에게 숭앙받는 내력을 상세하게 제의로 기념하게 한다. 서사시이기에 신들의 쟁패가 지니는 창조자가 후래자에 의해서 패배한 역사를 선명하게 부각시켜 놓고 있는 셈이다. 신화에서는 신들과 인간의 의례적 계약을 말하고 신들의 다툼을 후래신이 창조신이 만든 세상을 가로챘다고 함으로써 본디의 재래 종교의 신격이 외래종교의 신격에게 밀려난 사정을 아프게 말하고 있다.

신들이 벌인 쟁패에서 진정한 승자와 패자가 누구인가 판가름하도록 하고 있으면서 더 나아가서 잊지 말아야 할 신격이 누구인지 거듭 되새기게 하고 있다. 문헌으로 기록된 역사에서 승리한 쪽을 기록하고 있다면 구전에서는 오히려 패배자의 영광과 명예를 추존(推尊)하고 있다. 이것이 창세신화가 말하고자 하는 신화의 진실이다.

김헌선 경기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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