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역사를 담고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궁(宮). 덕수궁 터 옛 경기여고 자리에 미국 대사관을 짓는 문제로 여론을 들끓게 했던 궁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현 시점에서 궁궐은 우선 과거를 재현하는 장으로서 그 자체의 의미가 있다. 말 그대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크다. 역사의 현장을 발로 밟아 볼 수 있는 역사성과 현장성을 갖는 공간인 것이다. 과거 재현의 공간으로서 가장 눈에 보이는 것은 건축물이다. 현존하는 궁궐건축의 대부분은 19세기 중기 이후에 조형됐다.

의궤(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기록)에 공사내용, 건축감독자들, 참여자들의 이름이 조금이나마 기록돼있어 고건축 연구에 실제적 자료가 되고 있다. 손신영(본교 강사·고고미술사)씨는 “궁궐 건축은 고급재료와 고급스러운 기술을 구사해 만들어진 건물로 우리나라 건축 기술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말한다. 이렇듯 건축물 자체에 대한 이해는 궁궐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궁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로서 뿐만 아니라 궁을 배경으로 살았던 왕, 왕비, 신하들과 궁녀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활동했던 공간으로서의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궁을 배경으로 살았던 인물들의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라 말한다. 한희숙(숙명여대 한국사학과)교수는 “문화의식의 성장으로 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나, 이제 건물을 바라보는 피상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학자들은 이런 이해를 넘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하고 비전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순남 씨는 “과거 인물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다”며 “과거를 안다는 의미는 역사를 배우고 안다는 의미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궁궐지킴이가 관광객들에게 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둘째, 궁궐은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이다. 1997년 유네스코는 창덕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김순남(본교 강사· 한국사)씨는 “문화유산은 우리 민족의 자긍성을 높이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존재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궁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궁궐지킴이 최애선(생환대 식품자원경제01)씨는 “궁이 예전에 비해 친숙한 공간으로 다가서고, 정보의 접근성이 좋아져 미리 공부를 해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며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궁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이에 대해, 한희숙 교수는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와 교육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보다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수주의처럼 무조건 우리 것을 더 좋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를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과거의 유산인 궁은 현재에 와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궁의 풍경과 함께 잔디밭을 공원처럼 편안하게 찾고 있다. 손신영 씨는 “어찌보면 딱딱하고 재미없는 공간으로 궁을 인식할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복잡한 서울의 경우, 공원과 휴식공간이 부족하기에 궁이 휴식공간으로서의 의미와 기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림의 떡으로만 보였던 경복궁의 경회루도 횟수가 제한적이지만 공개되고 있다. 이처럼 점차 궁궐의 문화재들이 공개되는 추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우선 궁궐 내 조성된 잔디는 집 안에는 잔디를 심지 않는다는 우리 고유의 조경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지금 궁궐 담장 안에 있는 잔디는 궁궐에 가득 찼던 많은 건물이 헐리고 없어진 자리를 채운 것이다. 또, 사람들이 즐겨 찾는 궁이라는 의미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교수는 “조선시대의 궁의 의미와 함께 시민들에게 개방돼 이런 의미들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하지만 건물의 보전 관리에 신경 쓰고 손상치 않은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올바른 문화재 관리와 문화의식 성장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중들에게 궁을 알리기 위한 활동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모임은 우리궁궐지킴이와 우리궁궐길라잡이다. 이들은 모두 시민들의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주요활동은 궁궐을 안내하는 것이다.
우리궁궐길라잡이는 △경복궁△창경궁△덕수궁△창덕궁의 안내를 도와준다. 우리궁궐지킴이는 궁궐의 안내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궁궐 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직접 학교를 방문해 궁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한다.
궁궐지킴이 활동을 하는 최애선씨는 “예전에는 궁궐을 안내한다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이제 궁은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한 공간으로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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