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5대 궁궐로 불리는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 경희궁. 현재까지 남아있는 이 궁궐들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았던 역사만큼 많은 수난을 겪어왔다.

경복궁은 태조 4년(1395년)에 창건된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으로 임진왜란 때 화재로 완전히 소실된 후 273년 후인 고종 5년에 복원됐다. 경복궁은 고종 32년(1895년) 명성황후가 일인 폭도들에게 시해당하는 변을 당하고 이듬해 2월,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하면서 왕궁으로서의 운명을 마치게 된다.

이후 일제는 재건한지 얼마 안 되는 경복궁을 헐기 시작해 근정전, 경회루 등 10여 동만 남기고 모두 4천여 간을 철거시켰다. 또 경복궁의 남향 정면을 가로 막는 위치에 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일제의 조직적인 궁궐 파괴로 인해 경복궁은 현재 원래 규모의 약 15% 정도만 남아있다.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창경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던 창경궁은 일제의 의도적인 파괴 뿐 아니라 왕조 역사상 많은 비극적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숙종 때 장희빈과 그 일족의 처형, 영조 때 사도세자의 죽음이 창경궁에서 있었다.

이후 창경궁은 순조 때까지 몇 차례의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다. 1909년에는 일제가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면서 전각을 헐고 박물관을 건축해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일제에 의해 왕궁에서 놀이터로 전락하면서 그 이름도 창경원으로 격하됐던 창경궁은 1983년이 돼서야 제 이름을 되찾았다.

서울에 있는 다섯 궁궐 가운데 가장 크게 망가진 궁궐은 경희궁이다. 경희궁은 고종이 강제로 퇴위를 당하고 순종이 왕이 되면서 급속히 훼손되고 파괴됐다. 총독부 체제로 넘어가는 시점에 비어 있던 궁궐인 경복궁과 경희궁 터가 국유, 곧 총독부 소유로 넘어갔던 것이다. 일제는 기존의 궁궐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 없애고, 그 터에 일본인 학생들을 위한 총독부중학교를 세웠다. 그에 따라 경희궁은 궁궐로서의 면모를 거의 잃어버렸다.

덕수궁은 인조 즉위 이후 274년간 별궁으로 사용되다가 아관파천 이후 고종의 환궁으로 다시 궁궐로 사용됐다. 1904년 큰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던 덕수궁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비운의 장소가 됐다. 덕수궁은 1919년 고종이 함녕전에서 승하한 뒤 일제에 의해 본격적으로 분할·매각돼 현재는 대한제국 당시 규모의 30%정도만이 남아있다.

창덕궁은 태종 5년(1400년)에 이궁(離宮)으로 지어진 것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광해군 2년(1610년)에 중건돼 사용됐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제가 내외국인에게 관람을 허가하고 전시장 용도로 개조해서 전각이 철거되는 등 각종 시설이 개수됐다. 창덕궁 역시 1990년대에 와서야 복원이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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