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언어성폭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 들어 교수와 학생 간의 언어성폭력이 문제화되면서 학생?교수?전문가 집단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범식 연구위원은 “남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주도하던 과거, 대학 내 성폭력적 발언에 대한 학생들의 이의 제기는 힘들었다”며 “그러나 점점 여학생이 많아지고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대학 내 언어 성폭력 및 성폭력 사건이 빈번히 신문지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 강단에서의 언어 성폭력 실태와 문제점이 표출되고 있다. 언어 성폭력의 경우 성폭력과는 달리, ‘말’이라는 특성상 이를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 법적으로도 언어 성폭력의 기준을 △음란한 농담이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 △성적 사실관계를 집요하게 묻는 발언 등으로 세워 놓고 있다. 이 때문에 언어 성폭력 자체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 및 처벌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은 채, 성폭력의 범주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 

지난 3월 강성학(정경대 정치외교학과)교수의 여성 비하적 발언이 학내에서 논란이 됐다. 당시 ‘여성주의 1년 나기 프로젝트’라는 단체는 강교수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이를 교수가 거절하자 대자보를 붙였다. 이 후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김모(정경대 정외04)씨는 “그 당시 붙었던 대자보에는 문제가 된 강교수의 발언만이 써져 있을 뿐, 강의 상황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며 이는 교수에 대한 인신공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강의실 뒤집기’ 회원 정현희(서울대 국사02)씨는 “언어 성폭력 문제 본질은 교수의 발언 내용 자체로 인해 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느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한편 김수민(인천대 경영학과)교수는 “무심코 농담처럼 던진 말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며 “이처럼 수업에 제약이 있다 보니 예전처럼 자유롭게 강의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강의 중 언어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특성이 있다. 가해자는 존재하지만 피해자는 모호해 적극적인 사건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본교 여학생위원회원 송배수리(문과대 철학02)씨는 “가해자는 교수이고 피해자는 학생이라는 권력관계 때문에 문제제기에 어려움이 있다”며 “이뿐 만 아니라 남교수와 여학생이라는 남·여 성별구조 관계도 문제제기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즉, 언어성폭력에 대한 이의 제기가 발언 자체의 문제제기라기 보다 마치 교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인격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여성주의 단체의 입장이다.

교수의 언어성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이의제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보통 여성주의 단체에서는 학생들에게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대자보를 붙이는 형식을 사용한다. 마땅히 신고할 방법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이 속한 단체 이름으로 일방적인 대자보를 붙여 학생들에게 알리고, 교수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교수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인권재단 김보연 간사는 “민감한 내용의 대자보 일수록 그 대자보를 쓴 사람의 실명을 밝히는 편이 좋다”며 “단체명만 씌어 있는 대자보는 익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자보 속 주장에 대해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범식 연구위원은 “학생들은 사건에 대해 가장 빠르게 전달하는 방법이 대자보라고 생각한다”며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주변의 학내 성폭력 상담소에 연락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대학 내 성폭력 상담소는 ‘교수의 언어성폭력’에 관한 어떠한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한편 서울대 ‘강의실뒤집기’ 단체는 새로운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교수의 언어 성폭력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지난 달 5일, 소책자 <으랏차차! 강의실뒤집기>를 발간한 것이다.

<강의실뒤집기>는 지난 학기 화장실 낙서판을 이용해 서울대생들이 경험한 언어성폭력 사례를 수집했다. 여러 사례들 중 언어 성폭력이라고 판단되는 발언을 뽑아 수록했다. “여자는 너무 짧은 스커트와 진한 화장하고 오지 말고 향수도 작작 써라”, “여자들은 시집이나 잘가라”, “여성이 표준어에 빨리 적응하는 이유는 신분상승을 위해 시집을 잘 가려 하기 때문이다”식의 교수 발언들이 담겨있다. 정현희씨는 “일부 학생들은 성폭력적인 발언을 들어도 이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냥 흘려듣는다”며 “이러한 발언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문제화 돼, 같이 고민해보자는 의도에서 발간했다”고 밝혔다. 

소책자를 받아봤던 김상연(서울대 법학05)씨는 “교수의 언어 성폭력 문제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며 “이러한 책자 발간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언어 성폭력 문제를 담론화하고자 하는 의도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소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았다는 주현아(동국대 국문04)씨는 “교수의 언어 성폭력에 대한 책자 발간은 새로운 시도였지만, 언어 성폭력의 딜레마인 상황이라는 점은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평가했다.

‘性’과 관련한 문제는 자칫 잘못 다루면, 피해자든 가해자든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는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 속에서는 더욱 심각해진 개연성이 있다. 그렇기에 문제의 인식부터 해결에 이르기까지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함은 당연하다. 신성한 강단 위에서 좀더 신중한 교수의 발언이, 명확한 근거와 정당한 방법을 통한 학생의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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