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참살이 길을 지나가던 한 남학생을 무작정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이 무슨 표시인줄 아세요?” 그는 거리낌 없이 “중요한 것을 강조하는 표시요” 라고 대답했다. 물론 틀린 대답은 아니다. 

한때 ※표기를 보면 대학생들은 반사적으로 당구장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표기를 ‘당구장’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이 학생의 한마디는 최근 당구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과 6~7년 전 만해도 당구장이 대학가를 뒤덮었다. 당구는 한국의 대학문화의 변화와 그 궤를 함께한다. 2000년대를 넘기기 전 대학생들에게 당구는 스포츠이기보다 하나의 일상이었다. 정대 후문 앞에서 당구장을 경영하고 있는 고종성(경제학과 92학번)씨는 “그 당시만 해도 당구를 치지 못하면 남학생들끼리는 서로 어울리지를 못했다. 지금은 그 열기가 많이 사그라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당구하면 많은 사람들은 ‘자장면’과 ‘중독성’ 그리고 ‘물리기'를 떠올린다. 자장면은 당구와 함께 기계화되지 않은 서민적인 정을 제공한다. 주머니가 얇은 대학생들이 부담 없이 즐기면서 빨리 먹을 수 있다. 당구대에 걸터앉아서 먹는 그 맛은 당구를 쳐보지 않은 이는 느끼지 못한다. 당구는 그만이 지니고 있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전공 책이 당구대로 보이고 볼펜이 큐대로 보이는 현상은 당구를 쳐본 이라면 모두가 공유하는 색다른 경험이다. ‘물리기’는 대학생들에게 경쟁과 자존심의 상징이다. 얼마 안 되는 당구 비를 따기위해 당구장은 후끈후끈한 열기로 가득 찬다. 때론 친구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당구는 서로에게 공이 가는 길을 알려주며 승부하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문만국(의과대 01)씨는 “당구의 진정한 매력은 물리기예요. 서로 경쟁하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치니까 더 친해지죠” 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서 당구는 조금씩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은 ‘컴퓨터의 상용화’와 ‘온라인게임’ 열풍이다. 1990년대 후반 대학가에 자리 잡기 시작한 PC방은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등에 업고 대학가의 대표적인 놀이공간으로 자리 잡는데 성공했다. 최근 유행하는 개인블로그와 카페문화는 PC방의 위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또한 당구장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이에 한몫했다.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당구장은 동네 건달들의 집합소 혹은 불량청소년들의 탈선의 장소로 묘사되기 일쑤다.“PC방이 당구장보다 저렴한데다 당구장에 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왠지 꺼려져요. 여자친구한테 거짓말 하고 당구장 오는 친구들 많아요” 라는 김한석(전자전기공 05)씨의 말은 당구장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아직까지 당구는 1990년대 학번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쇠퇴하는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작년 모 연구단체에서 전국 270여개 초ㆍ중ㆍ고교 학생 1만5천명을 대상으로 여가활동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당구장은 7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현재는 중.고등학생도 떳떳하게 당구장 출입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충격적인 결과다. 이는 앞으로 당구의 쇠퇴가 더욱 가속화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구장도 변화하고 있다. PC의 구비, 만화책 비치, 음료수 무료 서비스 등 복합문화공간으로의 변화는 당구가 대학가에서 생존하기 위한 마지막 항거다.

당구장과 PC방은 대학가의 시대의 변천을 상징한다. 또한 갈수록 냉담해지는 대학의 현상을 함축하는지도 모른다. “당구는 얼굴을 마주보지 않으면 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컴퓨터는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당구와 컴퓨터의 이런 차이는 현재 대학문화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라며 문만석씨는 푸념을 토해낸다.   

사회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낭만’의 상징이었던 대학도 그러한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숨 막히는 경쟁과 부담 속에서 서로 마주보며 함께 먹고, 얼굴 붉히고, 함께 웃던 살가운 정이 사라져 가는 것은 비단 당구와 PC방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 강국이 갖는 어두운 그림자의 한 단면이 아닐까.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