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저 왔어요. 뭘 드시고 계세요?”
“달팽이”
“할머니는 꼭 나 없을 때 맛있는 거 드시더라.”
할머니와 두 형제가 사는 대전광역시 삼천동의 한 가정집. <인간극장> 제작진이 한참 식사 중인 이들을 찾아갔다. 제작진은 할머니와 두 형제와는 허물없는 사이인 듯 친근하게 농담을 하며 얼른 아침 밥상에 끼어든다. 두 형제는 자연스럽게 제작진에게 아침밥을 차려준다.

KBS 2TV 다큐미니시리즈 <인간극장>의 제작 현장은 바로 이렇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이다.

기자가 찾아간 취재 현장은 치매 할머니를 모시는 두 대학생 손자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아침부터 출연자를 찾아와 큰 손자가 학교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극장> 촬영은 PD와 카메라 감독, 단 두 사람이 출연자의 일상을 밀착 취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여러 명의 스텝과 조명 기구 등의 시설 없이 두 사람의 제작진만이 촬영에 임하는 것은 출연자와 제작진과의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인간극장>은 출연자의 일상을 진실성 있게 전달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에 출연자가 번잡한 촬영 환경에 위축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작고 기동성이 좋은 6mm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인간극장>을 제작하는 외주제작사 '리스프로'의 윤양석 PD는“출연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촬영 초반에는 출연자와 친해지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때로는 잠도 같이 자며 출연자와 친밀감을 형성한다.
“할머니, 뒷짐 지고 앞을 보면서 걸으셔야지. 옳지”

큰 손자가 학교에 갈 시간이 되자 제작진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하고 나선다. 손자가 나오길 기다리며 윤 PD는 “할머니, 어제 글씨 공부하시는 줄 알고 보니깐 맨 딴 짓만 하시더라”하며 농담을 건넨다. 할머니는 대전보건대학 노인보건복지과에 재학 중인 큰손자를 따라 매일 같이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7년 전 치매가 발병해 한때 심각한 증세까지 보였던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학교에 다니면서 상태가 호전돼 지금은 치매 환자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기자는 제작진을 따라 큰손자와 할머니가 수업 받는 현장을 찾아갔다. 손자가 할머니를 업고 학교에 들어서자 동료 학생들이 친근하게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기자가 참관한 수업은 레크리에이션 시간이었다. 조문희 카메라 감독은 둥글게 둘러앉은 학생들 사이에 앉아 있다가 중간 중간 일어나 출연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윤PD는 수업 내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각도에서 출연자를 관찰하며 간간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는 수업 중간에 “할머니께 노래라도 시켜보시죠?”하며 강사에게 할머니의 참여를 유도할 것을 권했다. 수업이 끝나자 윤 PD는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동료 학생을 인터뷰했다. 기자가 왜 중간에 인터뷰를 하는지 묻자 그는 “그때그때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빠르게 해석을 내리기 위해 현장인터뷰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출연자 입장에서 자신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는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할머니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출연자 정영철(남·29세) 씨에게 이에 대해 물어봤다. 정 씨는 “처음에는 카메라를 의식해 행동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적응이 됐다”며 “카메라에 찍힌 모습이 어떨지 조금 걱정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조 감독이 “우리를 믿는 거지?”라며 거들자 정 씨는 “사생활 침해될 만한 내용은 내보내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약속을 믿는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방송 후 사생활을 공개한 출연자에게 미칠 여파를 고려해 제작할 때 최대한 조심하지만, 편집권이 독립돼 있기 때문에 출연자에게 방송분을 미리 보여주지는 않는다.

윤 PD는 이 프로그램 촬영의 어려운 점을 묻자 “출연자가 내 마음 같이 움직이지 않는 졈이라고 말했다. 방송 가능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출연자의 진정성인 만큼 그들의 삶을 꾸미지 않고 담아야 하기 때문에 연출자가 바라는 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촬영에 임할 때 계속 편집 구성을 염두에 둬야 하며, 쉴 때도 출연자의 스케줄을 챙기고 출연자와 친해지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피로할 때도 많다. 실제로 병원에서 손자가 할머니의 새로운 증세에 대해 말하는 의사의 설명을 놓치자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커튼 뒤에 숨어있던 윤 PD는 얼른 그 이야기에 대해 다시 여쭤보라고 챙겼다. 매우 집중해서 출연자의 삶을 관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의식주를 함께하며 출연자와 일치된 호흡을 해야 하는 점은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기도 하다. 제작진은 출연자와의 끈끈한 정과 제작진의 인생 공부를 이 프로그램의 매력으로 꼽았다. 윤 PD는 “방송 후에도 출연자와 계속 연락을 한다”며 “출연자가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가게 되면 집에 놀러갈 정도”라고 말했다.

제작진이 생각하는 휴먼다큐멘터리의 필요성은 무엇일까. 조 감독은 “인간극장은 소수의 출연자를 통해 시청자가 다양한 인생사를 간접경험하게 한다”며 “보고 느끼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출연자의 삶을 진실 되게 보여줘 시청자들이 감동할 때가 바로 제작진이 일하는 보람을 느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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