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의 작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극장>이전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작가였다. 시사프로그램으로는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모자이크 처리가 대부분인 살벌한 사실과 섬뜩한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퍽퍽한 세상에서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휴먼 다큐멘터리(이하 휴먼 다큐) 작가로서 어떤 일을 하나.
-<인간극장> 같은 경우, 작가들은 다섯팀으로 각 팀당 5주간 활동을 하고 휴식기간을 갖는다. 활동하면서 원고를 쓰는 시간은 30시간이다. 하지만 다큐 작가에게 원고를 쓰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다큐 작가에게 원고 쓰는 작업보다 우선되는 것은 구성이다. PD와 함께 아이템을 잡고 15~20장 정도의 촬영 구성안을 짠다. 휴먼 다큐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인데 구성안이 뭐가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짜임새 있게 의도대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 것이며, 이 사람의 일상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잡는다. 그 방향에 따라 결말도 미리 예측하지만 예측과 실제 결과가 다른 경우가 98%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구조에서 나오는 갈등을 모르면 그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기 때문에 촬영 구성안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촬영한 모든 테이프를 보는 프리뷰 과정이다. 전체적인 순서 배열을 체크하고 상황에 따라 2,3일 전에 일어난 내용을 묶어서 하루의 일로 방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집약 편집을 해서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갈등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30장 정도의 편집 구성안을 짠다. 현장음과 나래이션 부분을 선택하고 몇 초인지 확인해 다시 원고를 쓴다. 방송되는 언어를 보면 특별한 점이 없고 단조롭다고 하지만 그 원고 한 줄을 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반추이다.

△처음의 기획과 방향이 다를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현장에서 촬영한 테이프 5~10개를 미리 보면서 PD와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형보다는 동생을 따라가면 더 좋은 방송이 나갈 것 같다’고 방향을 잡아주는 등 현장에 있지는 않지만 있는 것처럼 활동한다. 그러나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삶의 깊이와 기다림의 의미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기획을 버려야 한다. 다큐는 드라마와 다르기에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없고 있는 것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주인공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가.

-촬영과 원고 쓰는 것 모두 어렵지만 그보다 어려운 것은 <인간극장>의 주인공을 찾는 것이다. 영화보다 긴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나오면서 4천만명이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을 찾는 일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주인공은 시청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결정한다. 시청률 여부에 관계없이 <인간극장> 주인공은 박수를 받아 마땅한 대단한 사람들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해달라.
-모든 것들이 기억에 남지만 아이템을 잡을 때 가장 힘들었던 환석, 우석 형제가 기억에 남는다. 두 형제가 뇌성마비였는데 아이들은 촬영을 원했고, 엄마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와 무릎을 꿇고 통화했다. 모든 경우가 다 간절하지만 특별히 간절한 마음을 담았던 전화였던 것 같다. 또, 아이 6명을 키우는 카톨릭 신자 부부가 기억에 남는다. 결국 영혼이 탁해진다는 이유로 방송을 거부했는데 진심을 다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휴먼 다큐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광주의 조폭 아저씨, 외국인과 사는 젊은 여자, 된장을 사랑하는 스위스 아저씨를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사람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휴먼 다큐의 가장 큰 매력이다. 편집하지 않은 약 100개의 촬영테이프를 보며 울고 웃는다. 사람들은 연출 여부가 의심될 정도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주인공과 밀착돼 자연스럽게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휴먼 다큐는 사람에 대한 연구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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