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로 들어와서 여성 문제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의 하나로는 이른바 ‘신여성’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신여자, 또는 신여성이라는 말은 191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해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적어도 도시 중심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대중적인 용어가 됐다. 신여성은 한국의 경우에만 한정된 현상은 아니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근대로 이행하면서 영국이나 일본, 혹은 인도 등지에서도 ‘신여성 현상’은 찾아 볼 수 있었다.

신여성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은 1950년대 이후 도입돼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한국의 학계를 풍미한 근대화 이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적어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주제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1945년, 특히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추구해온 근대화에 대한 열망을 직접적으로 반영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신여성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많은 진전을 보였다. 이 시기 이후 이른바 거대담론의 붕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 연구자 층의 증가와 연구 영역의 다양화, 대학에서 여학생 비율의 증가, 여성 문제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의 증대 등을 배경으로 신여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던 것이다.

인도와 비슷하게 식민지 경험을 겪은 바 있었던 우리의 경우 신여성에 관한 논의는 특별하고도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사회적 권력이나 경제적 관계라는 일반적 변수들 이외에 식민지 상황에 고유한 민족 문제와 아울러 남성에 대한 여성이라는 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신여성의 실체와 개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엇갈리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신여성의 등장이 몇몇의 선구적 개인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시대적이고 집단적 현상의 하나로 이해돼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서 신여성이라는 개념은 일정한 시점에 고정된 이미지라기보다는 역사적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돼 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신여성은 근대성(modernity)의 문제의식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시기 나타났던 근대에 대한 열렬한 동경 및 추구와 흐름을 함께 하면서, 신여성은 ‘새 시대의 유일한 선구자, 창작자’로서 숭배되고 찬미됐다. 이와 아울러 신여성의 출현은 근대와 근대성 자체가 내포한 남성중심성에 대한 일종의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차원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 여성은 근대와의 동일시, 혹은 근대성의 구현을 통해 자신의 여성성을 극복하는 전략을 택했다. 근대 여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남성성으로 표상되는 근대의 공간에 투사하고, 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에 의한 근대성의 찬탈과 점유는 근대성 자체에 내포된 남성지배에 대한 부정과 비판으로서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1920년대 출현한 신여성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나혜석이나 김명순, 윤심덕 등을 들 수 있다. 이른바 제1세대 신여성으로 일컬을 수 있는 이들은 자유연애나 남녀평등,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같은 주제들을 가부장적 남성지배 사회에서 공공의 쟁점으로 제기했다. 봉건적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도전을 통해 이들은 사회 전반에 걸친 개조와 개혁을 달성함으로써 여성의 개성과 평등에 기반을 둔 신이상과 신문명의 사회를 건설할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신여성들이 제기한 다양한 쟁점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식민지 사회에 당혹감과 놀라움, 조롱과 멸시, 그리고 때때로의 분노를 야기했다. 이들이 제기한 쟁점들은 오해되고 왜곡되거나 억압됐으며, 대개의 경우는 짐짓 외면되고 방치되거나 무시됐다.

이에 따라 근대로의 이행에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최초의 문제 제기는 한 성의 다른 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 억압과 좌절, 그리고 상호 불신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평등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자각, 자유연애와 자유결혼 등에 대한 이들의 주장은 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력을 남겼다.

최근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는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대중 소비사회의 도래를 배경으로 여성의 자기의식의 자각과 확산, 경제·정칟사회 등의 여러 영역에서 여성 권리의 확대,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 및 역할 증대와 아울러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화와 경기 침체의 심화, 청년 실업과 빈곤의 만연 등을 배경으로 여성 실업, 이혼율의 증대, 저출산, 모성의 파괴, 자살과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자유로운 성이나 성적 욕망, 동성애, 동거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실행 또한 급격한 변화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거의 1세기 전의 역사를 어떠한 형태로든지 반영하고 있다. 억압이나 배제와 같은 폭력의 방식들이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됐다고는 하더라도 양성간의 평등과 상호 존중이라는 점에서 반대와 부정, 혹은 적대, 그렇지 않으면 무관심과 무기력 등의 현상을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성의 불화와 대립이 심각한 양상을 띠고 나타나는 만큼이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신여성들의 문제 제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20세기 전반기의 신여성을 기억하는 것은 21세기 전반기의 페미니즘을 창조할 수 있는 비전과 용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학중앙연구회 김경식 교수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