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챔피언의 하루
 
프로레슬링은 다른 스포츠보다는 오락적인 요소가 부각된 ‘스포츠 아닌 스포츠’ 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있는 美 프로레슬링처럼 화려한 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다른 종목처럼 대중의 관심을 얻기 어렵다. 더욱이 정해진 각본에 따르는 ‘조작된 승부’라는 폭탄선언과,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의 열기, 그리고 화려한 美 프로레슬링에 밀려 한국 프로레슬링은 사양길로 접어드는 추세다. 그럼에도 묵묵히 링 위에서 관중의 시선을 지켜나가는 선수들이 있다. 최태산(36) 선수가 그 중 하나. 주니어 헤비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가진 그와 그를 따라 제2의 챔피언을 꿈꾸는 사람들의 하루를 카메라 속에 담았다.


 
  
  
  
  
  
  
  
  
  
   
  

  
  
  
  
  
  
 
 
 “원래는 야구선수였죠” 고교시절, 우연히 찾아간 체육관에서 선수들의 용맹스러움에 반해 레슬링을 하게 된 그. 한국체육대학에 진학 후에는 대학 선수권 대회와 국가대표 선발전 우승, 졸업 후에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박치기의 제왕’ 김일 선수의 제자로 프로레슬링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게 된다.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프로레슬링이라는 과격한 운동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30대는 20대 때 배운 기술의 완숙기이기 때문에 꾸준한 자기 관리만 있으면 체력적 한계는 없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과 발은 그동안의 경기 중 생긴 상처투성이였다. 혹 상처뿐인 영광이 아닌지 묻자 그가 솔직히 답한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운동이 너무 힘들어 3번이나 숙소를 이탈했었고, 87년에 경기 중 팔이 탈골돼 2년 가량 레슬링을 쉬게 됐을 때도 그만둘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천직인가 봐요” 경기 때마다 안 다치는 곳이 없고, 관중들도 적지만 그래도 자신이 설 곳은 ‘링’이라고 말한다. 여타 스포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관중들 앞에서 경기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냐는 물음에 “美 프로레슬링에서 보여지는 선정적인 요소는 사절이다. 우리는 사실성과 오락성을 갖춘 한국적 레슬링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관중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답한다. 일본은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많다며 우리나라도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길 바란단다. “선수들은 관중들의 호응이 있으면 무대파워라는 게 생기게 되죠. 연습 때보다 안 힘들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경기를 하게 되요.”
  
  
  
 

 
 
 
 
 
 
 
 
 
 
 
 
 
 
 
 
 
  그는 후계자 양성을 위해 체육관에서의 시간을 대부분 링 위에서 보낸다. 16명의 제자를 직접 링 위에서 가르친다. 제자들은 대부분 낮에는 생업을, 밤에는 운동을 하며 지내는 사람들이다. “보통 때는 일반 사람들입니다. 먹고 살 것을 걱정하며 일하면서 프로레슬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한 명에게 이런 생활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며 잘라 말한다. “데뷔전을 치르면서 관중과 호흡하며 경기를 한다는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됐죠. 프로레슬링은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하며 자기만의 기술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운동과는 다릅니다. 그 매력 때문에 하는 거죠.”

“직접 해 보라고 해요.” 정해진 각본에 따른 승부가 아니냐는 물음에 안타깝다는 듯 답한다. 경기 때마다 상대 선수로부터 태클이 들어올 때 행여 걸려들면 견디기 힘든 고통이 느껴진단다. “누가 지고 싶겠습니까?” 각본 따위는 없다며 말한다. “며칠 전 경기 때문에 내 제자 중 한 명 이마가 찢어져 6바늘이나 꿰맸어요.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하느라 몇 달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다들 그러면서 하는데 각본이라뇨.”그런 인식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아쉬운 모양이다.

 생후 1달인 막내아들이 경기 때마다 와서 자신의 경기를 본다고 한다. 경기 중 아빠가 맞으면 안타까워한다고. “아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절대 쓰러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버티는 힘이죠.” 그와 레슬링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포부를 밝힌다. “보세요. 애들도 저를 닮아 자질이 보여요. 프로레슬러요? 원한다면 전폭적으로 도와줄 겁니다. 그때쯤이면 프로레슬링은 60년대보다 더 인기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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