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김광섭(1905~ 1977)은 지금부터 100년 전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에 이 땅에서 태어나 태평양 전쟁과 광복, 그리고 6 ? 25 전란을 거쳐 제 3 공화국 유신체제 시까지 민족의 격동기를 살다 간 대표적인 근대 시인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단히 시작 활동에 전념해온 김광섭의 시세계는 편의상 초기(시집<동경>) 중기(<마음>, <해바라기>) 후기(<성북동 비둘기>, <반응>, <반응이후>, <겨울날>, 유고시)의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김광섭은 1935년 <시원(詩苑)>지에 시 <고독>을 발표함으로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는 일제의 탄압이 더욱 강화되는 대신, 문단은 오히려 활성화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양상은 작품 발표 매체의 증대와 문학 의식의 심화, 확대 등에서도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으나 문인들이 일제의 사상 검열을 피하고자 시대 상황의 반영이나 사상성의 구현 등을 애써 외면함으로써 얻어낸, 불모 속의 개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1930년대 시인들이 이처럼 예술주의라는 연막에 가려서라도 그들의 문학을 지켜가려 했다면 순수시적 경향도 모더니즘 경향도 일종의 위장된 예술주의 일는지 모른다. 김기림의 지적처럼 그들이 현실의 ‘심각한 영상을 유미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면, 김광섭의 시는 분명 그들과 다른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선 김광섭 시에 나타난 서정적 자아의 내면 풍경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듯해도 당대의 상황을 암시하는 쪽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김광섭은 때로 저항시인, 혹은 민족 시인으로 운위되기도 한다.

    흐르고 쌓여 내려온
    온갖 울분을 다하여서도
    결국은 돌멩이 하나 움직이지 못할
    허망한 사념에 다다를 뿐

    드디어 불행을 거느리고
    고독의 삼림에 들다
                               <독백> 부분

암담한 현실에서 고독이라는 관념세계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 시적 화자의 독백은 가히 비극적이다. 그러나 현실을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인식하면서도 그러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자아로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는 점에 김광섭 초기 시세계의 독자성이 있다. 현실과 대립하여 그 구조적 모순과 비리의 낱낱을 해부하거나 정면으로 저항할 수는 없을지라도 ‘고독’ 속으로 유폐될 수밖에 없는 ‘나’와 ‘나’의 내면세계의 형상화를 통해 김광섭은 민족 전체의 어려운 삶의 국면을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김광섭의 시세계는 이처럼 ‘불행을 거느리고 / 고독의 삼림에 들’어갈 만큼 비극적인 내향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시집 <마음>과 <해바라기>로 대표되는 김광섭의 중기 시는 해방 이전에 쓴 시 33편까지를 포함함으로써 그 창작 연대가 1938년부터 1957년에까지 이른다. 이처럼 시간적 간격이 넓고 또 이 시기에 김광섭은 우익 민족문학운동의 전개, 언론인으로서 활동(<민주일보>사회부장, <민중일보>편집국장), 미군정청 공보국장 및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낼 만치 다양한 사회활동에 몰입한 까닭인지 시적 주제 또한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옥중 체험을 형상화하고 해방의 감격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지만, 곧 이어 전쟁으로 인한 상실의 비애와 공허감에 사로잡히며 그러면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조국애와 함께 강렬한 향일성의 의지를 드러낸다.

이렇듯 사회활동과 문단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온 김광섭은 1965년 4월 그만 뇌일혈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어려운 수술 끝에 회생한 후 오히려 원숙한 시적 성취를 이루게 된다. 더욱이 후기 시에 해당되는 이들 시편들은 작품 양에서 뿐 아니라 그 질적 수준에서도 초? 중기 시들을 압도한다.

(A)
     여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내게서 간다.
                               <생의 감각> 부분

(B)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성북동 비둘기> 부분
김광섭 초기 시문학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는 그의 시가 지성을 중시하는 만큼 관념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후기 시에 이르면 관념어의 사용은 오히려 증대되는 대신 관념적 표현은 현저히 감소하는 표현 기법 상의 변화가 나타난다.

김광섭 후기시의 시적 주제는 공동체적 삶의 인식에 있으며 그것은 무엇보다 ‘존재의 재발견’을 통해 형상화된다. 시(A)에 나타나듯 서정적 화자는 ‘여명의 종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로 인간과 가금류와 동물이 생동하면서 나름대로의 일체화를 이루는 아침을 형상화한다. 또한 ‘새벽별’의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으로 표상되는 동적인 이미지 속에서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공동체적 삶의 인식을 소중하리만치 각성한다.

시(B) 또한 비대화하는 도시 문명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은 한 마리 비둘기를 통해 현대 문명의 비정성과 소시민의 무력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시의 탁월함은 사실 사랑과 평화가 상실되어 가는 현대의 비극적 상황의 폭로와 고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그 각성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뿌리 뽑힌 삶임에도 불구하고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휙’ 도는 비둘기에서 우리는 어떤 종교적 비의마저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광섭이 그의 후기 시에서 때로 강렬한 사회 비판의식을 드러낸다거나 삶의 회고와 더불어 서서히 죽음을 예비하는 초탈의식을 드러냄도 이러한 공동체적 삶의 소중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김광섭의 시세계는 내향성의 비극에서 출발하여 인간애와 자연애가 어우러지는 공동체적 사랑에 이르는 ‘길의 시학’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더욱이 김광섭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서는 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에는 문단과 언론계, 학계, 관계에 이르기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민족 문학의 정립과 사회 현실의 개혁을 위해 부단히 진력한 실천적 시인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시문학사에 더욱 이채롭고 우뚝한 봉우리인지도 모른다.

손종호 충남대 교수 ·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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