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고대의 역사가 100년인데 비하여 총학은 40년이 채 되지 않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짧다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총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정권에 항거해왔던 고대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고대 총학은 한국 민주화의 역사와 함께 해왔으며, 어두운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밝은 등불이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이 내일의 청사진이 되지는 못한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전략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1987년에 민주화가 일어나면서 직접 선거제의 꿈이 실현되었고, 한국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권위주의 국가의 억압적 정책으로 인하여 자기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노동도 이제는 민주노동당이라는 제도적 기반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시민의 대리인이 되는 국가라는 민주주의와 효율적이면서도 공정한 시장이라는 시장경제의 이상이 달성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같은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우리는 총학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현실 정치에서의)‘위임된 자율성’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시기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총학의 현실 정치적 활동은 권위주의적 국가에 대항하기에 힘이 부족했던 시기에 노동이 학생·종교인 등의 힘에 기울여 일종의 정치적 연합세력을 구축하면서 얻어진 것이었다.

시민사회가 제도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총학은 이제 한국 현실 정치의 민주화에서 총학의 존재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고려대학교의 생활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그 초점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 생활의 민주화는 ‘등록금 투쟁’으로 대표되는 이익유도형 정치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Global KU 정책’은 무한경쟁 시대인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 강화 정책으로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학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학생들의 정당한 의사와 요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민주적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또한, 학생들이 선택을 할 때에 단기적 이익에만 신경을 써서 장기적인 효과를 놓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총학이 해야 할 역할이란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무조건 등록금을 내리는 것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 측의 입장에 따라서 학교의 경쟁력 강화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생활의 정치를 이루는 총학의 리더십은 학교의 정책 수용에 있어서 학생들의 요구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반영하되,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전략을 수립하여 집행해 나가는 것이다. !

39대 총학생회 선거의 무산은 위에서 살펴본 내용을 통하여 보았을 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째는 출마했던 후보들이 아직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담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보들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그들의 리더십과 정책에 반영하는 데 미흡하였으며, 학우들을 선거로 이끄는 데 실패하였다. 둘째는 그리하여 총학에 대한 불신의 제도화가 총학 선거의 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통하그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안에 있어서, 고대의 생활의 민주화를 만들어가는 데, 총학을 이끄는 주체들뿐만 아니라 고려대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해두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들에게도 이득이다.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당하는 것’이 역사이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참여가 책임을 만드는 것이다.
김재연(영문/정외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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