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어제 저녁 치노 유키코씨와 그 동안 제가 사기사와 메구무(鷺澤萌), 요시모토 바나나(吉本 ばなな)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고민했던 ‘작가 정체성’에 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보통 작가들이 이국적인 공간에 대해 글을 쓸 경우에는 다시 돌아올 현실 거점을 염두하고 쓰기 마련인데요, 그런데 이들의 작품은 시점과 공간이 공중에 붕 떠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럴 경우 작가는 어떤 정체성을 갖고 소설을 쓰냐고 여쭤봤더니, 일본인이라는 단일 정체성이 아니라 뉴욕, 북경과 같은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치노 유키코

정체성이란 바뀌는 것이 아닐까요. 가령, 안정환 선수가 이탈리아에서 뛸 때는 정체성이 이탈리아에 속해있고, 한일전에 뛰게 되면 정체성이 한국에 속해 있습니다. 즉, 국적은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후즈이 사다카즈

그렇다면 두 분 소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윤대녕

치노 유키코씨는 여러 국가를 여행하면서 소설을 쓴다고 하셨는데요,(치코 유키코는 북남미, 유럽, 중국 등지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단편 『플러싱-북경편』도 2001년 뉴욕을 여행한 후 쓴 작품.) 저도 유럽, 동남아, 중국 등을 여행하면서 소설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현실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자신이나 사회를 비교 문화적으로 해석하고, 작품 속에 정체성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이 점에서 치노 유키코와 다릅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 ‘분단 국가’라는 상황을 강하게 의식하기 때문에 아직 국제적 의식이나 세계 시민적 자세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양국의 역사와 사회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한·일 작가들의 의식과 양국의 문학 작품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치노 유키코

그동안 한국의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작품을 쓰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군요. 윤대녕씨께 질문이 있는데요. 저는 평소에 인생을 물의 흐름 속에 맡긴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작품에서도 물의 이미지를 사용하곤 합니다. 윤대녕씨는 물의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윤대녕

저 역시 세상을 이루고 있는 땅, 공기, 물, 불 중에서 물에 흥미가 있고, 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 채 글을 쓰곤 합니다.

후즈이 사다카즈

그렇다면 한국 전통 문학 속에서 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있나요? 또, 윤대녕씨는 전통과 외부 지식이 만나는 접점, 예를 들어 한국 전통 문학과 프랑스의 바슐라르(Bachlard, 프랑스 과학철학자 바슐라르는 상징체계의 4원소에는 ‘물, 불, 공기, 흙’이 있다고 했다. 그 중 물의 언어는 직접적인 시적 현실을 나타내며, 물이 가진 물질적, 역동적 상상력으로 인간의 심리를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다.)가 제시한 이미지가 중첩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대녕

우선 한국 전통문학 중에서 물이 등장한 작품으로는 『심청전』이 있어요. 전통적으로 한국의 근·현대 소설에는 땅에 집착한 작품이 많습니다. 6·25 전쟁 등을 겪으며 그런 작품이 더 많이 발표됐구요.
그런데 이미지적인 글쓰기는 최근 1990년대에 들어서 도입된 것 같아요. 이미지적인 글쓰기를 살펴보면 특히 물의 상상력을 활용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물의 상상력은 사물의 흐름을 존재하게 하고, 시각과 상황에 따라 보는 사람의 시선을 다르게 할 수 있게 만듭니다. 1990년대 이후 남북이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이러한 물의 변환적 상상력이 어느 정도 유용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