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타 시내를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중앙선을 침범하여 앞차를 추월하는 폭주 차량들을 쉽게 볼 수 있는가 하면 길거리 주차로 인해 주행 차선이 사라져버린 구간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거리 주차로 인해 도로의 일부가 주차장으로 변한 곳이 오피스 빌딩이 밀집한 상업지역이 아니라 관공서 또는 대학교 앞이라는 점이다. 서울처럼 오피스타운이 아직 잘 발달되어 있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래도 관공서와 대학가 인근 도로가 주차난으로 몸살을 앓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카자흐스탄을 방문하는 일반 관광객도 3일을 초과해서 체류할 때에는 자신의 숙소를 내무경찰에 신고하는 ‘거주등록’을 해야하고 자신의 집을 손보는 데도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그래서 아직도 관료주의 사회인 이곳에서, 관공서 앞 도로가 각종 민원인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혼잡하다는 것은 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대학가가 차량으로 몸살을 앓는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곳의 대학들은 국내 대학들처럼 교문과 학교 울타리로써 캠퍼스를 외부와 구분지은 대학들이 거의 없고 각 대학 건물들이 일반 건물들과 함께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보니까 교직원 차량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자동차도 거리주차를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남녀 대학생들과 그들이 타고 온 자가용으로 거리와 인도가 붐비는 것을 보고 이곳이 대학가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구소련 붕괴 후 시장경제로 이행되어 가는 최근 10년 동안 어느 대학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알마타 시내 ‘친선의 거리’와 ‘아바이 거리’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 키멥 - 카작 경영대학 - 은 학생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 ‘아바이 거리’를 따라 길게 늘어서서 도로의 바깥 한 개 차선을 완전히 점유하고 있다. 이런 도로 점유상태는 야간 강좌가  끝나는 밤 10시경이 되어야 비로소 한가해 진다.  그리고 카작 법률대학이 위치한 ‘아바이거리’와 ‘쟌도사바 거리’가 만나는 곳은 강의가 끝나는 시간인 오후 6시경이 되어야 비로소 도로소통이 원활해진다. 이런 사정은 카작 경제경영 대학이 있는 ‘쟌도사바’ 와 ‘쁘라브다 거리’가 만나는 지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편, 이런 사실들의 이면에서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각 대학별로 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의 숫자와 종류가 현저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학들은 주로 법이나 상경계열 대학들이다. 최근의 대학생들이나 그 학부모들은 구소련 3대 종합대학의 대열에 들었던 카자흐스탄 국립종합대학(카주구)보다는 취업률이 좋은 카작 법률대학이나 CIS 지역 최초의 MBA 과정을 개설한 키멥이라는 경영대학을 더 선호한다.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과정과 사유화과정 속에서 발빠르게 부를 축적한 일부 부유층은 그들의 자식들을 이들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상기 대학 출신들이 카자흐스탄에 진출해 있는 외국인 기업이나 국영 석유회사 등에 취업해서 핵심적인 역할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의 지속적인 자산증식과 부의 세습을 위해서는 법률 지식과 경제·경영지식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 발표된 카자흐스탄 경제에 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카작 경제는 두 자리 수 성장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3.5%밖에 되지 않는다. 이 수치는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통계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학을 졸업한 많은 대학생들이 ‘시간제 근무’도 구하기 힘든, 그래서 체감 구직시장은 아직도 구소련 붕괴직후의 한파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상기 대학들은 거의 100%에 가까운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위의 사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들 대학 학생들의 평균 자가용 통학율은 50%를 넘는다. 그것도 외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많다. 이에 비해 구소련 시절 전통적인 인기학과였던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 그리고 인문학관련 학과들, 즉 철학 역사 정치 어문계열 등은 상대적으로 비인기 학과로 추락해 버렸다. 이들 대학은 평균 97%이상이 예전처럼 전기 버스나 도시 전철을 타고 통학을 하고 있다. 이들 대학의 3%정도의 학생들은 자신이 방과 후 아르바이트를 통해 얻는 수입으로 1500불 정도의 서유럽이나 일본의 낡은 중고차를 사서 타고 다니거나 러시아 자동차인 ‘쥐굴리’ 등을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비해, 부모들이 생일 선물한 BMW나 렛서스 최신형을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주로 모인 대학들이 있다는 사실이 거리주차 난의 또 하나의 이면이다.

한국의 경우 80년대 중반의 3저 호황 후 마이카 붐이 일었고 마침 그 당시 과외 자유화 조치 등으로 호주머니가 넉넉해진 대학생들이 자신의 자가용승용차를 타고 통학을 함으로써 한때 주차 문제로 인해 사제간에 시비가 붙는 경우가 고작(?)이었던 것에 비해 카자흐스탄의 마이카 붐과 거리 주차난은 한국과는 다소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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