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네 가지 종류의 대학이 있다. 사회에 영향을 주고 다른 대학의 변화를 유도하는 변화창조형 대학, 다른 대학이 변화하면 그대로 따라 가려는 변화적응형 대학, 이해관계자들이 변화를 요구해도 버티는 변화저항형 대학, 다른 대학이 변화하고 있는데도 바라만 보고 있다가 도태하는 변화무관형 대학 등 네 가지이다. 어떤 유형의 대학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대학의 경영진과 구성원이 미래기회를 창출하려는 비전을 구현하려고 합심하여 노력하느냐의 여부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최근 변화를 창조하려는 움직임이 국내 대학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사립대인 연세대가 대학발전을 위한 재정확보 차원에서 기여입학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국립대인 서울대는 교육기회의 평등성 차원에서 지역할당제를 추진중이다.

교육자산의 효율적 활용차원에서 국.사립대학간의 역할 분담을 위한 확실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에, 서울대 총장이 신입생 지역할당제도를 제안하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학들이 교육기회의 평등성을 구현하는 데 공헌하여야 한다는 타당성을 앞세운다면, 논리적으로 서울대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국공립대학들이 지역할당제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사립대학인 하버드대가 지역할당제를 제일 먼저 시작하여 성공했으니, 한국에서 국립대학뿐만 아니라 사립대학들이 지역할당제를 한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작금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여입학제는 사회에 기여한 사람을 우대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대학의 재정 확보를 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 문제이다. 만약 사회에 기여한 사람의 자손을 입학에서 우대하는 것으로 출발하였다면 국민정서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고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여의 내용이 대학발전은 물론 사회정의 구현과 사회의 공공발전에 공헌한 것이라면 기여입학제의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아질 수 있고, 순기능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면 이를 반대할 명분을 잃게 될 수 도 있다.

정부가 국공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에 대한 국고지원을 이유로 사립대학을 행정과 재정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교육학원론에서는 “정부는 대학을 통제하지 말고 지원만 해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우이독경(牛耳讀經)일 따름이다. 재정적 지원을 하면 행정적 통제는 따라 다니기 마련이다. 이쯤에서 국고지원이 필요 없다고 선언하는 자립형 사립대학이 나올 만하다. 그래야 한국의 사립대학이 한국인들이 선망하는 하버드나 옥스퍼드 등 외국의 유명한 사립대학들과 수월성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사립대학은 그 대학이 고유하게 가진 설립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편성할 권리가 있고, 아울러 그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할 권리를 가진다. 사립대학의 교육과정 편성권과 학생 선발권을 정부가 침해해서는 대학이 발전 할 수 없음은 물론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 퇴색된다. 정부가 자율권을 보장하면 대학은 자율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현재의 한국적 상황에서 사립대학이 자율권을 획득하기 위한 첩경은 자립형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자립형 사립대학은 교육의 질과 서비스의 차별화에 따라 등록금도 차별화 될 수 있도록 대학교육행정의 자율이 보장되어야 한다. 비민주적인 과거의 역대 정권들에 의해 오랫동안 타율에 길들여진 대학 행정책임자들이 아직도 자율권을 발휘하지 못한 채, 정부가 자율적으로 하라고 해도 눈치만 살피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한국의 대학교육은 교육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며 이는 오로지 대학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모든 것을 정부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타율적인 대학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학의 발전은 물론 이 나라 교육의 선진화는 기대할 수 없다. 한국이 교육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대학이 창조적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고려대가 변화창조형 대학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자립형 사립대학 제도실시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지역할당제와 기여입학제는 자립형 사립대학 경영의 틀 안에 녹아들어 갈 수 있는 제도이다. 자립형 사립대학은 대학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자립형 사립대학으로 대학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고려대학은 변화를 창조하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도약하여 세계 인류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발전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권대봉(사범대 교수, 성인계속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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