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과정에서 지롱드당과 자코뱅당은 사실 동지라기보다는 앙숙에 가까웠다. 세계최초로 소집된 민주적인 의회안에서 이들은 사사건건 대립했을 뿐 아니라 각종 연설이나 팜플렛 등을 통해 상대방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국내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불편부당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네 입장에서 보자면 당시 공화파들은 극렬 좌경분자 아니면 극우주의자들로 생각될 정도로 극심한 대립양상을 보였다.

결국 공포정치라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결말에 이르렀지만 좌우파의 시초라 불릴만한 이 두 정파가 그나마 일정기간 연대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국왕으로 대변되는 “구체제”에 대해 저항하는 혁명정신때문이었다. 기득권세력에 반발하는 프랑스시민의 열망이 있는 한 이들은 갈라서기 힘들었던 것이다.

주말 심야에 전격적으로 결정된 후보단일화 합의. 대선이라는 국가적 이벤트에 마지막을 장식할 빅이슈임에 틀림없다. 세세한 사항이야 실무진에서 상의할 문제고 양 후보가 합의한 사항이니 누가 됐든 “反昌連帶”의 선두에 서서 반민주적이고 기득권에 집착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는 십자군으로 나설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범민주세력이 결집해 해 싸움을 하려고 하니 일단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하지만 이렇게 희망섞인 기대를 하면서도 가슴 한편으로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쪽은 지금까지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입장을 취해왔고 다른 한쪽은 일생을 재벌가의 귀공자로 살아 오면서 최상류의 생활을 해왔다. 얼핏 생각해봐도 어울릴 것같지 않은 이 두사람의 차이는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의 면면을 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사회정의 실현을 비중있게 생각하는 이들과 성장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이들은 물과 기름만큼이나 어울리기 힘들다. 신념과 비전이 비슷하지도 않으면서 수구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목표만 내세워서는 제대로 된 공약이나 정책이 나오기도 힘들뿐더러 설사 나온다 해도 이행되기가 쉽지가 않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라는 행사가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님을 생각해 볼 때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연대는 오히려 민주적 선거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다. 

“구체제”가 사라진 후에 오는 것은 이질적인 집단끼리의 반목과 투쟁이다. 국민적 요구라는 미명하에 대선승리만을 목표로 한 합종연횡의 끝이 어떠했는지를 우리는 지난 대선을 통해 알고 있다. 또다시 그러한 “숫자만 더하는 정치”를 해야만 하는 우리의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단일화로 인해 권력분할이나 논공행상이 없을 거라는 점이다. 어느쪽으로 결론이 나든지 일관된 정치소신이 관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는 셈이다. 정상적인 정당정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구체제”라도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될지, 또다른 이전투구로 빠져들게 될지 지켜볼 따름이다. 

<善>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