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제 기간, 밤새 주점에서 놀던 학생들은 다음날 입실렌티에서 연예인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자리를 맡으러 녹지운동장으로 올라간다. 실컷 놀고 난 다음 남는 건 '재밌었다'는 기분 뿐. 과반 친구들과 소동(小同)하지만 '고려대' 모든 학우와 대동(大同)하지 못한채 그것이 대동제의 일부란 사실도 파악하지 못한다.

"최악의 역사적 상황에서 먹고 즐기는 축제 문화는 결국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우월과 특권을 누리는 것에 불과하다"

제 1회 대동제를 기획한 1984년 본교 총학생회장 고병헌(교육학과 81학번)씨의 발언이었다. '대동제(大同祭)'는 1984년 본교 총학생회의 주도로 처음 시작한 행사다. 이는 당시 남녀 짝짓기 이벤트와 수익사업 류의 행사 일색으로 향락적, 소비적이었던 대학축제문화 전반에 대한 반성으로 만들어졌다.

제 1회 대동제에서는 본교생들이 학과에 상관없이 주어진 기간 내내 함께 새끼줄을 꼬고, 그 새끼줄로 만든 범머리로 ‘범머리 대기 결전’을 벌였다. 또한 각 단과대학과 학과가 주최하는 △이색적인 이벤트 △촌극 △강연회 △토론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입실렌티가 응원 중심의 행사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주점에서는 학생과 지역 주민이 어울렸다. 모임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시대상황 속에서 대동제는 지역 사람들을 대접하며 각종 사회문제들 토론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장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첫번째 대동제가 열린지 22년째가 되는 지금, 본교의 대동제가 진정 ‘크게 하나되는 축제’인지는 의심스럽기만 하다. 대동제 기간에 응원단은 입실렌티를 하고, 각 과반들은 주점을 열고, 동아리들은 행사를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소동(小同)’에 그칠 뿐이다.
현재 많은 학생들에게 대동제는 단지 응원단의 입실렌티와 과반의 주점으로 기억된다. 김진국(사범대 가교06)씨는 대동제에 대한 질문에 “대동제라는 말은 처음이다. 축제는 입실렌티고 그때 과반에서 주점을 한다는 것만 선배에게 들었다”고 대답했다. 또한 김필수(문과대 불문04)씨는 “대동제와 주점은 별개의 행사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주점과 입실렌티가 대동제 행사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고 단순히 행사를 즐기는 것이다. 이처럼 대동제는 입실렌티와 주점이라는 양대 행사 속에 묻혀 그 이름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입실렌티와 주점이 대동제에서 이렇게 큰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학생들이 참가할만한 행사가 없기 때문이다. 초기에 이뤄지던 새끼줄 꼬기와 범머리 대기 결전과 같이 단과대학을 뛰어넘어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는 물론이고, △촌극 △강연회 △토론회 등 단과대 이상의 단위가 주최하는 행사들은 대동제에서 자취를 감췄다.
또한 기획 행사의 중심에 서왔던 동아리들의 참여도 매우 저조하다. 작년 본교 서창캠퍼스(이하 서창)의 대동제에 참여한 동아리는 37개중 단 6개였다. 동아리 이름으로 참가 한다해도 주점이 대부분이다. 장세완 애기능동아리연합회회장은 주점위주의 동아리 참여에 대해 “특별한 행사를 기획해도 학생들의 참여가 적어 아예 수익사업인 주점을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참여할만한 행사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현재 활발한 주점과, 입실렌티가 소비적인 축제문화로 변질되는 점도 문제다. 특히 주점은 지역주민과 어울리던 대동제 초기의 모습은 사라지고, 학생들 맘대로 가격을 정해 폭리를 취하기도 한다. 이는 대동제가 생길때 비판했던 1970년대 주점의 모습과 흡사하다.

입실렌티도 진정한 학생들의 축제라고 보기엔 무리라는 비판이 많다. 신재석 중앙동아리연합회(이하 중앙동연)회장은 “입실렌티는 돈을 내고 표를 사서 경쟁해 자리를 잡고 연예인을 보고 오는 것에 불과하다”며 “학생들의 자체 생산, 소비에 의한 축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동제가 지금처럼 진행되는 가장 큰 원인은 학생들의 저조한 참여다. 사실, 학생 참여의 저조는 대동제 개최 초기부터 지속되온 문제라 할 수 있다. 본지 1987년 5월 11일자의 대동제를 평가 기사에 보면 “올해 대동제는 의외로 본교생의 참여가 부진했다. 개인주의 경향과 함께 대동제를 그저 즐기려는 안일한 태도가 있다”라는 학생참여저조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이후에도 매년 짜임새 있는 준비, 개인주의적 성향극복이 절실하다고 지적됐다. 그러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단과대, 동아리의 다양한 행사의 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점차 심화되는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 1992년을 기점으로 대동제 기간 중 단과대가 주최하는 학술제, 예술제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전체 행사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대동제는 고대인 전체를 아우르는 축제로서의 위치를 상실했다. 또한 안암·서창의 통합 대동제 시도가 번번히 무산됐다.
이처럼 이미 멀어진 학생들의 관심을 끌 방안으로 마땅한 비책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신 중앙동연회장은 “작년 대동제 때는 처음으로 아침, 낮 시간의 행사를 기획했다”며 “밤에만 주점으로 북적이던 민주광장이 아침과 낮 시간에도 학생들로 붐비는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이러한 노력이 쌓이면 좋은 축제로 거듭날 것이라 내다봤다. 또한 서창 총학생회(회장=차상엽·과기대 컴퓨터정보01, 이하 서창총학)는 “아직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았지만, 학생들에게 직접 할 일을 만들어 줘서, 축제를 진행할 때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참여하며 즐기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는 축제에서 즐기는 축제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각 동아리의 특색을 살려 이색적인 행사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선한 아이디어로 작년 대동제 때 좋은 호응을 받았던 ‘장애인사랑동아리 하나둘다섯’의 ‘휠체어 타고 정대후문 폭풍의 언덕 오르기’는 그 좋은 예이다.

또한 단과대학을 뛰어넘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행사의 부활도 필요하다. 과거의 영산줄다리기, 씨름대회 등을 재현하지는 않더라도, 단과대학을 뛰어넘어 모두가 하나의 고대인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행사가 필요하다. 이 같은 대규모의 행사의 부활에는 총학생회의 강력한 의지가  선행돼야 한다.

올해 안암캠퍼스의 대동제는 총학생회가 늦게 세워져 오는 15일(월) 시작으로 대폭 미뤄졌다. 그러나 이 기간은 응원단의 입실렌티와 교내 방송국들의 방송제가 모두 마무리 된 이후다. 이미 대동제라는 행사기간이 입실렌티와 방송제 등 대동제의 한 부분이었던 큰 행사들을 잡아놓을 만한 영향력을 잃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안암 총학생회는 참여를 이끌어낼 목적으로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축제준비위원회’를 모집 했다. 오직 축제만을 준비 하기 때문에 다양하고 참신한 행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서 설립됐다. 이는 다양하고 참신한 행사들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입실렌티도 없고 방송제도 없는 이번 대동제에서 주점 이외에 어떤 행사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대동의 의미를 되새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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