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衣. 食. 住’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먹을 것(食)이 아닐까 싶다. 집이 없어도 살아가는 노숙자가 서울에만 2000여 명이 넘는다고 하며, 옷이 없어도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아직도 오지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농림부는 올해 쌀 생산량을 발표했다. 3422만석. 7년만에 최소 수확량이라고 한다. 물론 매년 큰 폭으로 감소되는 연간 쌀 소비량은 웃도는 수치다. 아직까지 쌀은 우리의 主食이다.

“우리가 맨날 먹는 것이 바로 쌀이여, 이걸 우리가 만들어 먹어야제 남에게 사다 먹어버릇 하면 언젠가는 결국엔 다 사다 먹어야 할 것이여.” 지난 13일 우리 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이하 농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라남도 화순에서 올라온 한 할아버지는 술이 얼큰해 벌건 얼굴로 쌀을 수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날 여의도에 모인 7만 명(경찰 추산)의 농민들은 모두 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농민대회는 이렇게 추위를 이기기 위한,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한 막걸리 한잔으로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1995년 35만석의 쌀을 수입한 것을 시작으로 8년 째 쌀을 수입하고 있다. 올해는 107만석. 쌀 전체 생산량의 3.5%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2004년까지 최소수입량(MMA)을 전체 생산량의 4.0%까지 올리고 WTO와 재협상하도록 돼 있다. 그렇게 반대하던 쌀 개방이 이뤄지고, MMA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식생활 변화로 쌀 소비량은 줄고 재고량은 늘고, 농업 강국인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은 맺어지고…. 이래저래 농민들을 여의도로 불러모을 만한 이유는 많았다.

농민들의 성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을까? 예정시간보다 늦어진 2시 30분부터 시작된 행사는 흥겨운 공연 한마당이었다. 여기저기서 농민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원래 춤과 노래를 즐기던 우리 농민의 전통적 모습인지, 아니면 醉氣의 舞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와중에 대통령 후보 세 사람의 연설이 시작됐다. 
 

 


추위에도 불구 7만 농민 여의도 매워

농민, "더 이상 空約에 속지 않는다" 
  

 


신변의 위협을 느꼈는지 원내 최다수당의 대통령 후보는 참석하지 않았다. 16일에 단일화 발표를 했지만 당시까지 2, 3위를 달리던 두 후보는 농민들의 분노를 피해갈 수 없었다. 한 후보는 얼굴에 계란을 맞았으며 다른 후보도 날아드는 돌을 피하며 연설할 수밖에 없었다. 농민과 함께 투쟁하겠다며 현장에서 붉은 머리띠까지 둘러맨 노동자 정당의 한 후보만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농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후보가 WTO나 FTA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재벌2세인 한 후보는 “저는 농민의 아들입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으니 뻔한 결과였다.

“니가 농민을 아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함을 뒤로하고 대통령 후보들은 농민대회장을 떠났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 중 농민의 편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농민들은 속고만 살아왔다. 쌀 개방하지 않겠다던 사람이 쌀 개방하고…. 이 자리는 농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자리이다. 400만 농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경상북도 상주에서 올라온 한 농민의 말은 대통령 후보에게까지 계란을 던진 농민들의 분노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김순옥 전국여성농민총연합회 회장이 단상에 올라 △쌀 개방 반대 △농가부채 특별법 재정 △FTA 국회 비준 반대 △농산물 통상 협상권 농림부 이관 등을 골자로 하는 8대 결의사항을 낭독했다. 농민들은 기어코 미국 성조기까지 불태운 후에 한강 둔치를 벗어나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국회의사당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고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추운 날씨에 해까지 져 지방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일찌감치 버스에 올라 갈 길을 재촉했으며 국회의사당 진입로에서 전투경찰들이 농민들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여러분, 전경들도 다 여러분의 아들들이고 손자들입니다.”

전투경찰 지휘자의 말에 농민들은 모두 발길을 돌렸다.
 
‘아들…, 가족….’

힘들다, 힘들다면서도 지금까지 계속 땅을 파는 것은 다 가족들 때문이 아니던가. 가족들 때문에 때려치우고 싶고 농약병을 입에 물고 싶어도 땅을 파지 않았던가. 또 다시 가족이 농민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 날 농민대회는 경찰과 별다른 충돌 없이 무사히 끝났다. 다음 날 일간지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계란을 맞은 사실이 크게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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