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학원 앞에 붙어있는 강사 광고 현수막들 (사진 박가희 기자)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명에 육박한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한때 TV 시트콤을 통해 유행했던 말이다. 이 말처럼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고시 열풍이 거세다. 고시생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고시촌 중 하나인 신림동에 찾아가 봤다.

신림역에 내려 버스로 15분 정도 들어간 신림9동. 잔뜩 낀 황사에 싸인 고시학원들이 양쪽으로 늘어섰다. 편의점, 노래방, 식당 등은 다른 동네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좁은 골목사이로 법학원, 고시식당, 수많은 독서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여지없는 고시촌이다. 한 서점의 외벽에는 하숙집 광고와 외시 합격자 명단 등이 덕지덕지 붙어 탁한 바람에 날리고 있다. 신림동에서 가장 많은 수의 학생들이 다닌다는 한림법학원 안으로 들어가자 학원 복도 벽에는 학원 강사들의 강의 광고 포스터와 강의실 배정표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학원 부원장의 소개로 잠깐 들어가 보게 된 민법소송법 강의실. 일반학원 강의실의 6배는 족히 될 것 같은 대형 강의실에 200~300명의 학생들이 띄엄띄엄 앉았다. 교단에 선 민법소송법 강사는 아주 빠른 속도로 바쁘게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이 끝나니 학생들이 우르르 계단에서 내려와 한산하던 신림동 거리가 금세 활기를 띈다.

 한림학원에서 지난해 9월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박(남 · 24살)씨는 신림2동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학원에서 3시간정도 수업을 듣고 하루에 2~3시간 정도 개인공부시간을 갖는다. 학업과 고시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다는 박 씨는 고시열풍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안정된 직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답한다. 안정된 직장에 대한 열망은 고시를 준비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상장기업 직장인 7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메일 설문조사 결과에서 273명(36%)의 직장인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답했다. 그 동기로는 ‘노후 대책의 막막함 때문(48.8%)’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한림법학원 조대일 부원장의 말에 따르면 로스쿨의 영향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대학교 저학년은 예전에 비해 줄었지만 회사를 퇴직한 후 로스쿨을 준비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행정고시로 많이 이동해 학원의 전체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든 편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사법고시는 법학과목을 35학점 이상 이수해야 한다는 의무조건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또 다른 고시학원인 베리타스법학원 관계자는  로스쿨에 대비해 직장인 대상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그 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학원을 운영해 로스쿨 신생을 시장 확대의 기회로 삼겠다는 각오다. 여기에 직업안정성과 고소득에 대한 학생들의 열망이 합쳐져 당분간 고시 열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시학원 앞에 붙어있는 강사 광고 현수막들 (사진 박가희 기자)


신림동에서 불어오는 고시열풍은 본교도 피할 수 없다.

‘빈자리가 없으므로 입실 문의는 사절합니다’

본교 인문강의동 3층 고시실 문에 붙어있는 문구다. 본교에서 제공하는 고시실은 입실시험까지 실시해 합격자를 가려야 할 정도로 경쟁이 높다. 본교의 인문강의동 3층 전체는 고시실로 이용되며 △정경대의 호림원 △문과대의 양호재 △경영대의 탁마정 △사범대의 사도원 등 각 단과대마다 고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문강의동 3층으로 올라가자 긴 복도를 따라 율호제, ?범터, 청운제 등의 이름이 붙은 10개 정도의 고시실이 서로 마주보고 늘어서있다. 이 고시실은 전공에 관계없이 모든 단과대의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복도에 3~4명의 학생들이 쉬러 나와 있지만 발소리와 말소리가 커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어서 고시실 복도는 조용한 분위기다.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고시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겉옷 5~6벌이 걸린 옷걸이와 생수통, 냉장고, 에어컨. 고시생들의 생활의 흔적이 역력하다. 입구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당번, 대청소 날짜, ‘책장 넘기는 소리, 칼 소리, 펜 놓는 소리에 유의합시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통로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 학생들이 두꺼운 책을 보며 공부하고 있는 곳은 발소리, 문 여닫는 소리도 미안할 만큼 쥐죽은 듯 고요하다.

이곳에서 2년째 고시를 준비하는 이모(공과대 산업시스템 99)씨는 고시열풍에 대해 “취업이 쉽고 합격한 후 장점도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곳에서 공부하는 이종걸(신방과 99)씨 역시 “고시에 합격하면 인생역전을 할 수 있다는 사회의식이 널리 퍼졌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생각한다”며 의견을 밝혔다.

박길성(문과대 사회학과)교수는 고시열풍의 원인을 직업안정성 보장,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관직 선호의식으로 봤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개인적 측면에서는 고시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 위험부담이 크다는 점, 사회적 측면에서는 과도하게 많은 인력이 고시준비에 매달리다 보니 인력공급 면에서 불균형이 생긴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박 교수는 고시생들이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고시 열풍을 막아보고자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고시 외의 고시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기세고 로스쿨 도입에 따라 사교육 시장이 더욱 살아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오늘도 수많은 젊은이들은 ‘고시패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맹목적 고시공부는 무엇을 남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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