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100주년을 지나며 본교는 민족고대에서 세계고대로의 도약을 다짐하는 ‘글로벌 KU’를 모토로 국제적 수준의 교육시스템 구축과 캠퍼스를 조성하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고대가 진정으로 세계명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남성중심적 문화를 대변하는 것으로 고착되었던 고대 이미지를 쇄신하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고려대학교가 성차별적인 한국사회의 축소판은 아니었나하는 진지한 반성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고대문화의 혁신은 자랑스러운 고대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본교가 감히 ‘민족고대’를 자처할 수 있는 것은 자유·정의·진리의 고대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적 부조리와 억압에 도전해왔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양성평등한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서 모교가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보다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 변혁을 견인해 온 고대 전통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로 불리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열악하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의 임금은 남성의 64.2%에 불과하다. 대조적으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여성이 65.4%로 남성보다(38.1%)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 이런 실정이니 만큼, 세계경제포럼(WEF)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남녀평등성취도는 후진국 수준으로 분류되고 있다(세계 58개국 중 54위).

이처럼 성을 매개로 한 차별이 여전히 불식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고려대학의 임무는 무엇일까? 성차별적 사회를 재현하기보다 우리 사회에 잔존해 있는 여성차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계몽, 선도하는 것이 사명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녀가 서로 존중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배우고 실천하는 공간으로 고대 스스로 거듭나야한다. 또한 여성 차별적 현실을 비판하는 한편, 여학생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보다 여성친화적인 학교정책과 문화 조성이 절실하다. 이런 변화는 가부장적 문화의 전형으로 낙인찍힌 고대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쇄신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임인숙(문과대 사회학과 교수·젠더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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