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를 이야기 할 때면 색채가 주는 감성과 연상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이는 사람이 색채를 볼 때 단순한 색채의 시각적인 자극을 벗어나 그 색채 속의 감성과 숨겨진 ‘그 무엇’을 동시에 보기 때문입니다. 고대로 올라 갈수록 매체와 염료가 발달하지 않았고, 엄격한 사회적 통제로 인하여 색채는 더욱 상징적이고 의미 중심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대의 문화나 색채 환경을 추론하는 연구에서는 색채의 기본적 의미와 상징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연재에서 다루게 될 색의 기본인 파랑, 빨강, 노랑, 검정은 색을 구성하는 기본이 되는 것으로 흰색, 녹색과 함께 인간의 6가지 지각색에 해당합니다. 인쇄의 4원색은 이와 조금 다른 시안(Cyan), 마젠타(Magenta), 노랑(Yellow), 검정(Black)입니다. 약호로는 CMYK로 사용하며, 이는 인쇄 순서와 같습니다. 이들 중 시안색이 아닌 ‘상징적인 파랑’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파랑은 특정 집단이나 특정 연령 등 계층의 구분 없이 모두 좋아하는 색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나 유럽의 어떤 국가에서도 가장 선호도가 높고, 연상되는 이미지 또한 긍정적인 면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이야기 할 때 파랑은 가장 조용하고 후퇴되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색이기도 하다. 녹색이 자신을 숨기기만 하는 색이라면 파랑은 ‘자신을 보여 주면서도 조용한’ 그런 색이다. 따라서 파란색의 실내는 조용하면서도 침착한 분위기가 된다. 실내가 소란스럽고 정신 없는 분위기일 때 실내를 파랑으로 만들면 차가워진 분위기로 인하여 실내는 조용한 침묵의 공간이 된다. 이런 사실은 실험을 통해 다방면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역사 속의 파랑은 어떤 이미지였을까? 우리나라는 젊은이의 기상과 호연지기를 상징하는 색으로 청색을 사용하였고, 그 의미는 청화 백자에 남아 있다. 영국에서는 귀족, 특히 그 중에서 남자의 정절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되어 물망초, 치커리 등의 꽃말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리하여 국왕의 영원한 정절을 상징하는 색이 로열블루이다. 로열블루가 국왕, 권위를 나타낸 데에는 이처럼 정절과 침묵이 동반되는 상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파랑은 또한 무한한 상상력을 주는 공상의 색이기도 하다. 파랑은 우리가 흔히 우주를 그리거나 표현할 때 사용되어 무한한 공간 속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공상과학영화(SF)의 대부분이 파랑의 배경과 색채 타이틀을 사용한다. 이는 파랑 속에서 상상과 무한한 공간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파랑은 근대 화가에게 있어서는 비탄과 슬픔의 색이기도 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시안색을 중심으로 파리 뒷골목의 서정적인 슬프고도 가난한 노동자의 생활과 그들의 감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뒤이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등의 화가에게 영향을 주어 소위 감성을 표현하고 상징을 담아내는 비대칭 추상미술이라는 최초의 추상파 화가 군을 형성케 하였다.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서 나온 파랑의 조용함은 근대 화가의 영향으로 가시화되어 감성으로 정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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