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에 끝난 월드컵 8강전 독일 : 아르헨티나의 경기의 끝은 페널티킥이었다.

승자가 누가 되었든, 다시 한 번 느낀 것이지만 페널티킥으로 승부를 가르는 장면은 선수에게나 지켜보는 팬들에게나 그렇게 마음을 졸이게 할 수가 없다. 경기내내의 열정적이고, 화려하며 때론 지저분하기도 한 모든 경기과정들은 페널티킥 상황으로 돌입한 순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특히 축구는 지독한 결과의 스포츠다. 이런 축구의 특성으로 월드컵에선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지켜보는 팬들은 이런 장면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이러한 카타르시스는 전세계를 휩쓴 월드컵 열기의 이유 중 하나 일 것이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결과가 자주 일어난다. 결과의 스포츠는 우리에게 시합종료 후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나게 한다.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경우 : '저게 바로 축구의 묘미지!' . 강팀이 약팀을 이기는 경우 : '역시 골결정력 차이는 어쩔 수 없어' 경기과정이 어떠했든 경기결과는 우리의 판단을 고정시키고 , 이것은 시간이 갈수록 고착된다. 가나가 브라질에게 0:3으로 패배한 경기, 이 경기를 본 사람은 그 당시에는 가나의 선전을 기억하며 브라질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할 것이나, 그 후에는? 브라질과 가나의 16강전 경기 결과는 3:0 이라는 결과의 스코어가 남아있을 뿐이다.

2006 월드컵을 시청하면서 자주 '결과지상주의' 라는 단어가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우리 주위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현상이 너무도 많고, 그 현상에는 의문을 품기도 힘들다. 대부분 좋은 과정을 걸친 좋지않은 결과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뿐, 모든 것은 결국 결과로만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과정이 어떠한 구체적인 성과물을 이뤄낼 수 없기에, 결과만이 수치화되어 그 성취를 판가름할 수 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결과지상주의'의 맹점은 바로 '지속가능함'의 부재다. 어떠한 과정을 거쳤든 좋은 결과만 내면 된다는 생각, 하지만 그러한 성취는 바로 그 한 때 이다. '한탕주의' 와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 있을까.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16강전을 보자. 레드카드, 옐로카드가 몇 장이 나왔고, 비신사적인 행위가 경기 중에 남발되었다는 것은 0:1로 포르투갈이 승리했다는 결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비신사적 경기를 펼친 네덜란드가 이겼다고 가정했을 때, 결과는? 승리이다. 경기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던 잘못된 매너를 고치고, 보완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승리의 도취감에 빠져 그들은 전세계에 방송된 네덜란드의 축구가, '비신사적'이라는 세계적인 공감에 끼어들지 못함은 물론이다.

또 하나의 예로 최근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온 황우석 교수 사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위정자를 포함하여 국민 대다수는 황교수의 업적에 대해 최면 상태에 빠져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황교수는 예전 인터뷰에서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이 말은 지금 다시 해석해보면 그가 - 애국심의 발로였는지, 그의 진심을 알 수는 없다 - 실험결과에 따른 조국의 위상을 위해 과정따위는 무시할 수 있다는 말로 생각된다. 그의 논문 위조가 들통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 인한 그의 성취는 지속가능한 것인가? 올바른 과정을 거치지 않은 혁신적인 결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서 공격받고,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오늘 밤늦게까지 축구를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올바른 과정에 의한 결과물, 성취물만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 그 과정에 있어서의 왕도는 없을 것이지만, 최소한 자신의 양심과 도덕률에 어긋나지는 않아야 그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가끔 주위에서 보이는 타인의 위대한 결과와 성취가 우리 눈을 멀게 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그의 성취는 우리에게 동기로 작용하기는 커녕 질투와 시기만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만한 성취를 이루게한 피나는 과정이 있었음을 알아야한다. 결과물의 환상, 성취물로 인한 한 때의 성취감에 흔들리지 말고 차근차근 나아가자. '결과지상주의' 는 한탕일 뿐이다.

2002년에는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페널티킥으로 스페인을 이겼을 때, 스페인국민들은 축구의 결과주의에 허탈해했겠지만, 우리는 마냥 즐거웠으므로. 애국심이 사고를 마비시켰다고나 할까....황교수도 이러한 애국심의 발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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