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現 동북아 속에서 한국의 역할 -
동북아시아가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지역에 대한 열강들의 야심은 우리를 긴장하게 한다. 중국은 경제성장으로 축적된 막강한 자본력으로 우주산업과 더불어 군사력 증진에 힘쓰고, 일본은 오랫동안 지켜온 평화국가에서 신자유주의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礎石)을 다지고 있다. 이에 질세라, 미국은 병력재배치를 통해 세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고자 꾀한다. 러시아 또한,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열강들이 맞부딪치는 한반도는 최대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수혜자이다. 자칫, 신(新) 냉전주의로 치닫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현명한 자세는 무엇인지, 100여 년 전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검토하며 살펴본다.

수십 년, 혹은 수 세기 후의 미래를 염두에 두면서 평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영구평화론'의 칸트이다. 그의 ‘영구평화론’은 오늘날 ‘민주주의 평화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안중근의 이름이 떠오른다. 안중근은 한국 민족주의자이며 국제주의자였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것도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동양평화론자로서 취한 행동이었다.

   
1909년 10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대련(大連)시(요동반도 남단) 인근의 여순(旅順) 감옥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았다. 그는 1910년 2월 사형선고를 받자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 이전부터 저술해왔던 '동양평화론'을 완성할 때까지 집행을 미뤄달라고 법정에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법정은 이를 거부하고 서둘러 안 의사를 살해해 '동양평화론'은 서론만 남아있다.

당시 안 의사가 재판장에게 '동양평화론'의 내용을 설명한 기록이 최근 일본에서 발견돼 그의 사상에 대한 추론이 가능하다고 김영호 유한대 학장(前 산업자원부 장관)은 말한다. 김영호 학장(이하 김 학장)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러 동북아 국가들이 공동으로 군대를 관리하고 그 총 지휘부를 동북아의 요충지인 대련에 설치하는 평화적 방위 시스템을 제창했다. 또한 동양평화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구상엔 동북아 국가들이 역내(域內)의 여유 돈을 모아 필요한 지역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동북아개발은행과 더 나아가 공동화폐론이 담겨있다.

- 한국은 편승(bandwagoning)해야 -
한국은 동북아의 허브를 지향할 것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 속에서 편승(便乘; bandwagoning)을 통해 번영해야한다. 특히 김 학장이 동북아 협력의 틀로 '허브' 대신 설정해온 '코리도'(통로, 회랑; corridor)는 특정 국가가 중심 축(허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가 공동 번영을 위한 협력과 교류의 통로로 역할을 맡는다는 개념이다. 이 같은 구상은 협력보다는 경쟁과 견제의 구도로 치우친 동북아권의 발전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영호 학장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아직 미완성이다. 우리가 완성시켜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 5·4 운동의 구호가 '안중근을 따르자'였을 만큼 안중근 의사는 동북아시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는 중국 1극 체제에서 일본 1극 체제로, 다시 냉전질서를 거쳐 다자 구도로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동북아에서 수 천 년 만에 다자주의적 평화협력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런 시기에 동북아 국가들의 공동전략을 주장한 국제주의자였던 안중근 의사의 의미는 크다."

- 現 동북아 속에서 한국의 역할 -
유럽에서 프랑스·영국·독일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 속에서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고래싸움에 터지는 새우등이 아닌 어부지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자꾸 ‘새우등’이 되려고 한다. 우리는 '새우등'이 아니라 '편승'으로 가야 한다. 속된 말로 묻어가야 한다.

안중근은 여순(현재의 대련시)에 동북아평화 거점을 두자고 했다. 그때 미·중·일·러가 탐냈던 지역이 ‘여순’이었다면 지금은 한반도가 그 성격을 지닌다. 그렇다면 21세기 동북아 평화의 거점도 바로 한반도인 셈이다. 안중근 계획으로 가면 미·중·일·러가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하나의 평화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다. 군비축소(軍備縮小), 공동개발은행, 공동화폐, 공동 기술 인프라 구축 같은 주장들을 바로 이 지역 평화거점인 한국이 대담하게 주장하고 나서야 한다. 이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오늘날 던지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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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wagoning : 국제정치의 Balance of Power 이론 중 하나의 개념으로 약소국은 강대국의 흐름을 타고 잘 이용해야한다는 것.(편집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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