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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조국은 재일 한국인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들이 꿈에서도 그리워했었던 조국이건만 조국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조국이 그들에게 선사한 것은 분단 이라는 가슴 아픈 현실뿐이다. 아직까지도 우리의 머릿속 깊숙히 잠식되어있는 반공의식은 재일 한국인 사회를 조총련과 민단으로 갈라놓는 제 2의 분단 현실을 낳았다.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 당시 우리 정부는 ‘반일’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그러한 슬로건은 부메랑이 되어 그 당시 일본인들의 반한감정을 자극하며 재일한국인들이 더욱 핍박받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한국정부가 재일한국인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65년 한일지위협정은 재일 한국인들의 법적 지위 및 그 처우가 한. 일 사이에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고자 기대하는 모든 이들의 한줄기 빛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러나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차관과 보상금을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정부는 일제 식민지 시대 및 일본의 자의적인 필요와 상황에 따라 도항, 혹은 정주를 강요받았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책임규명을 확실히 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과거를 덮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재일 한국인 문제는 말 그대로 외교 정책의 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1965년 한.일 협정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의 경제발전의 튼튼한 기틀이 되어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재일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65년 협정은 한 민족이면서도 다른 법적 지위 또는 처우를 당하게 된 제2의 38선이 한. 일 협약에 의해서 법적으로 공인되는 비참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재일한국인 문제에 한국정부가 적극적이지 못한 데에는 경제발전을 위한 기틀을 일본이 주는 보상금과 차관에 상당수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배경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국가적 분위기 또한 크나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1945년 남북이 분단되던 시절부터 남한에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첨예한 이념의 갈등이 존재했다. 그러한 현실에서 당시조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재일한국인들을 포용하기는 힘들었었고,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던 반공법(현재 폐지)과 일제 식민지 치하로 인한 뿌리 깊은 반일감정은 그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훗날 한.일 정부의 91년 각서 교환과 재일한국인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그들에 대한 영주 자격이 확실시 되고 사회보장 제도가 상당수 개선되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에 대한 처우개선이나 기타 당연히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들에 대한 개선의 여지가 철저하게 묻혀 버렸다는 데에서 65년 한일 지위협정이나 91년 각서교환은 분단의 역사가 잉태한 현실의 한계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 한국이냐? 조선이냐?>


우리들이 흔히들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재일 동포들의 국적이다, “재일 동포는 무조건 일본 국적 아닌갚라고 묻는 이들이 대 다수인데 그러한 국적에 대한 오해가 때로는 그들에 대한 편견을 유발하기도 한다.

   
▲ 항의하는 제일동포
재일동포의 국적에는 일본으로 귀화를 한 동포를 제외하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한국국적>이고 또 하나는 <조선국적>이다. 흔히 한국국적은 남한, 조선국적은 북한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우리의 잘못된 지식에서 파생된 오해에 불과하다. 조선 국적동포는 전체의 20%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질적인 북한 출신자들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일본은 현재 남한은 정당한 국가로 인정을 하고 있지만 공화국은 국적으로 인정을 하지 않기에 조선은 국적이라 할 수가 없다, 즉 조선 국적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엄밀히 이야기 하면 무국적자(無國籍者)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무조건 총련이다’ 라는 인식 또한 분명히 오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체성의 기로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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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1세대 재일 한국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2,3세대 재일한국인에 대한 문제일 지도 모른다. 1세대는 본국으로의 귀속의식이 강했고, 투철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문화적인 차이 또한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포용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에 오랫동안 정주하면서 생겨난 2,3세대의 경우는 1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향을 띌 수밖에는 없었다. 그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경험이 전무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조국이라는 막연한 의무감 하나만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재일한국인 2,3세대인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생겨난 이유 없는 차별과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 지급되는 외국인 등록증은 그들에게 큰 충격일 수밖에 없으며 거기서부터 그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도 시작이 된다.

그러한 민족적 정체성의 무질서 속 에서 그들은 어느 한쪽에 귀속되고자 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을 띄게 되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굴욕과 고난의 역사가 남겨놓은 <차별>이라는 더러운 찌꺼기뿐이었다.

한국인이 되고자, 그리고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조센징, 반쪽발이라고 하는 매몰찬 한마디 뿐 이었던 것이다. 조국을 그리워하는 그들에게 조국은 '반공법'이라는 철퇴로서 그들을 가두어 놓았고 한국 사회 내에서 그들에게 쏟아지는 그릇된 편견과 직업선택과 신분보장 자유의 제약은 그들의 한국인이 되고자 하는 의욕도, 그리고 자신감마저도 꺾어버렸다. 그들은 엄연한 역사의 가장 큰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60여년이라는 역사적인 세월과 끝을 알 수 없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일의 정세는 그들을 어느 곳에서 정착할 수 없는 제 3의 민족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들이 받아야 하는 이유 없는 고통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며, 그들은 어디에 정착해야 하는가.
누가 그들을 역사의 돌연변이로 살아가게 만들었는가.

그에 대해서 고민하기 이전에 우리가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은 그 책임의 분담에 있어서 우리 또한 절대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며,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두운 역사의 바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그들의 정처 없는 표류는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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