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 이라는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평범하지 않다. 영화 <말아톤>은 단평영화에서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인 정윤철 감독의, 장편 영화로의 성공적인 데뷔작이자 배우 조승우의,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여실히 드러낸 영화이다.

연일 언론매체에서 대하게 되는 영화 <말아톤>의 흥행 소식과 호평. 나 또한 영화 속 대사와 장면들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이 영화를 즐겨 봤다. 그런데 막상, 영화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니, 이 영화에 대해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든다. 난 왜 화가 난 것일까?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비오는 날, 경숙(김미숙)은 자폐증이 있는 아들, 초원(조승우)을 다그친다.
“따라해!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몇 번씩이나 말을 하도록 시켜보지만 초원은 엄마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다. ‘비’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자폐아’ 초원이 20살이 되어 엄마가 아파 누워있는 것을 보고는 병원 밖으로 뛰어나가 비를 맞으며 동생 중원(백성현)에게 울먹이듯 말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물론, 자폐아의 경우, 남의 말을 따라하고 반복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입증된 사실이지만 그러한 말들을 적절한 상황과 감정 하에 표현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이 대사(“비가 주룩주룩 내려요.”)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관객들로 하여금 다소 억지스런 영화적 감동을 느끼게 한다.

어린 시절, 초원은 동물원에서 엄마의 손을 놔 버려 길을 잃어 버렸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초원은 어른이 됐어도 그것을 기억하고는 엄마에게 말한다.
“동물원에서… 손 놨지? 그래서… 초원이… 잃어버렸지…?”
동물원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과 지하철에서 길을 잃고 치한으로 몰려, 얻어맞는 사건. 이 두 장면에서의 절묘한 플래쉬백과 오버랩, 그리고 반복되는 대사들이 너무나 잘 짜여진 듯한, 억지로 껴 맞춘 듯한 느낌을 준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에, 관객들은 완벽한 시나리오로 인해 감정 몰입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상의 새로운 뭔가를 기대하지는 못한다.

초원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말'

   
영화 속에는 ‘말(馬)’이 자주 등장한다. 집 앞 공터의 커다란 벽이 어느 순간 말이 뛰노는 초원으로 바뀌는가 하면, 동물원에서 길을 잃어버린 초원을 찾은 장소도 얼룩말 앞이다. 초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당연히 ‘말’이 나오는 동물 다큐멘터리이다. ‘말’ 때문에 남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말’ 덕분에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급기야 마라톤(marathon)도 그에겐 ‘말’아톤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고, 초원에겐 너무나 친숙한 존재인 ‘말’. 자연을 사랑하고 말처럼 힘차게 달릴 때 자신의 존재감과 희열을 느끼고,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 ‘초원’.
그런데 껄끄러운 장면이 있다.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경기 후반부터 힘차게 달리기 시작하는 초원이가, 그 동안 자신이 거쳐 갔던 장소(할인마트, 수영장, 지하철, 야구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달리는 장면. 뒤이어 초원에서 얼룩말과 함께 달리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판타지로 보이는 이 장면들을 통해 감독은, 마라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장애를 극복하는(그것이 극복할 수 있는,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자폐아를 보여주려고 한다.

   
자폐증으로 인해 초원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런 초원도 ‘말’과 ‘달리기’는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단지 ‘좋아할’ 뿐이다. 그런데 감독은 이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달리기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공존한다’는 식의 '영화' 속 이상화된 주제 의식은, '현실' 속 타자, 장애인을 단지 ‘예쁘게’ 포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단편영화 <기념촬영><동면>에서 뛰어난 연출력과 창의성을 발휘한 정윤철 감독이 상업· 대중영화에서는 ‘자본’과 ‘대중’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짐에 겁을 내는 것인지, 부담을 느끼는 것인지, 더 이상의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재는 좋았지만 결과물이 너무나 ‘예쁘게’ 포장되어 뒷맛이 씁쓸한 영화 <말아톤>을 만약 다시 보게 된다면 나는 과연 ‘기쁠까?’ ‘슬플까?’ ‘화가 날까?’ ‘겁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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