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대하는 자세

트렌드란 마크 알랭에 의하면 갑자기 발생하여 급속도로 퍼져가는 것으로써 일시적인 성질이 있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대한민국만큼 트렌드에 민감한 나라가 또 있을까?  본래 유행이란 좀더 스타일리쉬하고 멋져보여야 하거늘 우리의 ‘획일적 유행 따라하기’는 민망한상황을 연출하곤 한다. 얼마전 한사람 건너 한사람은 어그부츠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이런 획일적 트렌드 문화는 스타시스템에 의해 꾸준히 재생산되며 놀라운 파급력을 가지고 거리를 휩쓴다. 김희선 머리띠, 김남주 목걸이, 임수정스웨터, 이효리 스타일의 토탈코디 등 이 그것이다.


   
이처럼 트렌드는 '패션'에서 가장 뚜렷하게 감지되지만 그밖에 모든 사회문화현상에서 트렌드를 읽어 낼 수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싱하형의 거친 말투가 유행중이다. 싱하형은 모 인터넷사이트에서 악플러(의도적으로 악의성 댓글을 다는사람)로 활약하던 인물로 그의 어투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하나의 '어법'이 되었다. 냉소주의가 반영된 그의 거친 말투속에는 일면 세태를 걱정하는 듯한 ‘형의 자세’도 엿보인다.

아직까지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웰빙열풍은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 트렌드의 질이 한층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웰빙열풍'은 식생활 의생활 여가생활등  생활전반에 걸쳐 웰빙스타일의 행동패턴을 제시한다. 이는 어찌보면 트렌드라는 굴레가 너무 많은것을 제한하고 있는것 같다.


트렌드에 열광하는 이유

우리가 트렌드에 열광하는 이유는 트렌드가 여러모로 편리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보다 특별해 보이고 싶은 ‘차별화의 욕구’를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개인이 매번 차별성을 창조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일이다. 남과는 달라보이고 싶지만 그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인지한 현대인에게 유행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첨단 유행을 쫓는것은  지난한 고민없이도 차별화의 욕구를 어느정도 해소해준다. 

자기파괴적 성향
그러나 차별화의 욕구에서 출발한 "트렌드"는 획일화로 치닫는 주기성을 그 숙명으로 하기때문에 자기파괴적 성향을 지닌다. 유행을 선도하는 그룹의 "차별화의 욕구"와  유행을 쫓는 대중의 "모방의 욕구" 는 교묘하게 맞물려 유행의 생성과 소멸을 재촉한다. 유행은 "빠르게 변해야 한다"는 점도 바로 이 속성에서 파생된 유행의 또다른 속성이다. 

트렌드! 그 배후의 조종을 주목하라
21세기 현대문명을 설명하는 키워드인 트렌드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유행을 이끄는 아주 패셔너블하고 감각적인 소수의 그 누군가가 있을 것 같지만 이는 실지로 미미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소프트웨어적인 것은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다 할지라고 그것을 유행시키는 데에는 보다 조직적이고 치밀한 기획이 수반된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실체는 무엇일까?  트렌드는 자본주의사회를 지탱하기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자본과  대중매체의 합작품이다. 차별화 되고싶은 개인의 열망을 반영하는 '다품종 소량 생산 매커니즘'은 끊임없는 “다품종”의 개발을 통해 기존의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하고자 한다. 자본은 이 모든 기획을 주도하며 대중매체와 광고에 의해 트렌드의 전파가 이루어진다. 이로써 유행의 기획이 완성되는 것이다.

   
광고는 트렌드를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예전의 광고가 상품을 직접적으로 소개하는 형식을 취했다면 요즘의 광고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 그 속에 은근하게 광고상품을 배치한다. 요즘의 광고는 우리의 의식세계에 시나브로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유행에 동화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한다. 멋진 모습의 스타 가 광고 속 에서 상품을 사용하는 모습은 모방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광고가 저자세로  다가와 노골적으로 ‘이 상품을 사주세요’ 하는 것이 아니라 동경할만한 이미지에 의해 더 강하게 그 상품에 매료되는 것이다. 우리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계산의 산물인 이 고단수의 유혹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트렌드를 받아들이려고 하더라도 거대자본이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트렌드의 유혹 앞에서는 무력하기 그지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밖에 대중매체는 드라마나 쇼프로의 연예인을 통해 유행을 주입시키고, 문화소개 형식을 빌은 '보도기사'에 의해 유행을 만들어 네는데 기여한다.

‘트렌드’를 조심하세요

   
트렌드가 이런 거대자본의 기획하에서 파생된 산물이라면 트렌드의 질은 올바른 의식을 가진 트렌드기획자(자본가)에 의해서 보장될것이다. 문제는 자본가는 도덕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정도 저급하지만 대중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불건전한 트렌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행은 수용자의 '차별화의 욕구'와 같은 능동성이 작용하여 만들어지는 면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수용자의 능동성은 미디어에 의해 쉽게 무력화 된다는점에 주목해야한다. 이는 미디어가 트렌드에 권위를 부여해주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뒤쳐지는것이라는 암묵적인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몸짱, 얼짱 트렌드는 비정상적인 외모지상주의임에도 버젓이 하나의 문화트렌드로 자리잡아 많은 이들을 고되게하고 있다.

좋은의도를 가지고 출발한 트렌드의 변질에도 유의해야한다. 아직까지 식지않은 웰빙 열풍은 건전한 트렌드의 좋은 예이나, 모든 트렌드는 시간이 갈수록 그 신선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건강이라는 그야말로 건강한 지향을 갖고 출발한 웰빙열풍은  자칫 사치성 짙은 문화로 변질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렌드는 시대의 거울

   
트렌드는 이처럼 거대한 기획에 의해서 양산되는 것이지만 그 기획자체가 대중들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므로 대중의 성향이 어느정도 반영 되어 있다.  트렌드를 향유하는 대중은 무조건 수동적으로 트렌드를 흡수하는 것 이 아니고 나름대로 재해석을 가하기도 한다.

특정집단의 정체성 형성
트렌드는 '획일화'라는 속성을 지니는데 이는 한집단의 성격을 들어내는 상징적 기능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틴에이져들 사이에서 교복을 줄여 입는다거나  니삭스를 신는 등의 행위는 교복이라는 제한된 테두리안에서  나름대로 패셔너블 해지고픈 열망을 표현하는 동시에 또래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것이다.

진보적 시대정신의 발현
트렌드는 그 속성상 끊임없는 갱신을 요구 받는다 .트렌드의 소멸은 새로운 트렌드의 전조인 것이다.  트렌드는 다수의 심중이 반영된 '변화'의 흐름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그 자체에 진보정신이 담겨 있다. 요즘 광고나 유머의 트렌드인 패러디문화는 세태풍자의 유용한 도구이다. 이는 인터넷 민주주의의 한 방편으로서 의사을 표현하는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다.

트렌드를 대하는 자세
우리는 데이빗 리즈먼이 『고독한 군중』이라고 지적했듯 주체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타인의  눈치를 보며 가장 안전한 매뉴얼에 따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트렌드는 우리의 거울이자 등대이고 때로는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트렌드는 거대자본이 만들어낸 소비지향적 신기루이긴하지만  그들 역시 대중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점에서 대중이 트렌드의 궁극적 주체임은 확실하다. 트렌드에 끌려가지 않기위해서는 한차원 높은 곳에서 관망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요구된다. 트렌드를 읽어내는 안목과 개인의 소신이 있다면  무차별적인 트렌드의 유혹 쯤 간단히 제압할 수 있 을것이다.

우리를 간편하게 '멋쟁이'로 만들어주는 트렌드는 주체적으로 수용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어느 헐리우드스타는 자신을 '트렌드의 노예'라고 했다고 한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주객전도인가? 트렌드는 '나'를 돋보이게 해주고 내 삶을 좀더 윤택하게 해주면 그만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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