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도록 이어진 고(高)학번 선배님들과의 술자리에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예전 대학생들의 문화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가지 흥미롭게 들었던 얘기 중에 하나가, 예전에는 타 대학 간에 미팅이 있은 후에,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학보를 상대방에게 보내주는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그 선배님의 말을 빌려 보면, 당시 학교엔 다른 학교의 여학생, 남학생들로부터 받는 학보의 수가 많을수록 그 사람은 인기가 많은 사람으로 평가되는 분위기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 시절 대학생들에겐 학보를 주고받는 문화가 보편화 되어 있었음을 짐작해 본다.

‘학보’라는 말에 생소해 하는 학우들도 있는 요즘, 타대학간 서로의 교내 신문을 학우들 간 자발적으로 주고받는 문화가 있었다는 건 요즘은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지금은 납득하기가 조금은 어려운, 그런 문화가 존재할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문화를 가능케 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우리 학교의 ‘학보’에 대한 친근감, 그리고 무엇보다 ‘학보’에 대한 애정을 가졌던 학우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예전의 학우들이 가졌던 애정에 비해, 요즘 학우들의 학보에 대한 애정은 크게 줄어든 것 같다. 내 친구 중에는 라면 냄비나 중국음식의 받침대로 쓰기 위해 고대 신문을 수십부씩 자취방으로 가져가는 녀석도 있었으니, 힘들게 기사를 쓴 기자들이 이 사실을 알면 무척이나 속상해할 일이다.

현재 고대 신문은 학우들에게 필요할만한 정보들이나 소식들을 전달해주는 역할은 충실히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 신문’이라는 따듯한 시선을 보내기에는, 고대신문의 이미지는 조금은 차갑다.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학교의 대변인으로서 정보전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고대인들마저, 대부분 고대 신문을 이름 그대로 ‘고대 신문’이라 부르고 고대 신문을 ‘우리 학교 신문’이라고 부르는 학우들은 별로 없다. 학내 언론으로서, 교내 신문으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은 정확한 정보 전달이겠지만, 나는 고대신문이 어떻게 학우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고대 신문이 나에게 친구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가 학내 소식을 얘기해주는 듯한, 고대 신문이 지금보다 친근하고 애정 있게 볼 수 있는 ‘우리 학교 신문’일 수는 없을까. 소중한 벗으로 학우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고대 신문의 고민과 노력을 기대한다.

장혁진 (KUBS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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