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아이들을 만나면 습관처럼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는다. 궁금 반, 기대 반으로 하는 질문이다. ‘엄마, 아빠’라는 비교적 소박한 꿈을 가진 아이, ‘대통령’이나 ‘장군’을 입에 담는 통이 큰 아이가 있는가 하면, ‘헬렌켈러’니 ‘세종대왕’이니 의아한 대답을 하는 녀석들도 있다. 물론 녀석들이 뜻하는 것은 그 인물을 존경하고 있고 자신 역시 훌륭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뜻일 것이다. 위인전을 많이도 읽은 모양이다.

사실 위인전만큼 그 내용이 밝고, 긍정적인 글도 없을 것이다. 새싹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싶은 어른들의 배려 때문인지 ‘聖人’도 아닌 주인공들은  주목할 만한 훌륭한 업적이 있고, 실수한번 한 적 없는 등 그야말로 ‘대단한 분들’로 그려진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우리는 위인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지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반항도 했었고,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 등 분명 흠이 있더란 말이다. 그때 쯤이면 인물의 거대함보다는 개인의 ‘노력’에 의한 ‘성과’임에 주목하게 된다.

최근엔 기존 동화 속 주인공이 새로운 캐릭터로 재등장한다. 마냥 착하기만 했던 아우, 흥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보천치로 그려지고, 심술쟁이 놀부는 합리적인 인물형으로 그려진다. 아름답고 선하게만 전형화된 공주의 형상은 디즈니 만화 『슈렉』에서는 초록색 괴물로 변신하기도 한다. 신작 동화 『백설공주는 정말 행복했을까?』는 그동안의 우리가 품어왔던 상상의 나래가 행여나 주어진 환상은 아니었는지 반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다만 초점은 기존의 형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시도를 접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시키는 데에 있다. 필요에 의한 시각의 고정은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양산할 뿐이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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