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강의실 의자가 부족할 정도로 출석률이 좋은 것, 그리고 학내에 있는 신문과 잡지가 유난히 잘팔리는 것이다. 고대 안에서 볼 수 있는 매체만 해도 신문과 잡지를 합하면 족히 대여섯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그 중에서 대부분은 한 번 읽고 버려지고 만다. 이처럼 신문과 잡지가 일회용품이 된 데에는 ‘무거워서’ 혹은 ‘들고 다니기가 귀찮아서’와 같은 간단한 이유도 있겠지만 신문이나 잡지가 ‘언론’답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신문은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사회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느 한 쪽만 강조하다 보면 신문으로서의 균형을 잃고 만다. 지금의 일간지를 보면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답답하다. 이런 관점에서 고대신문을 볼 때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거칠게 보면 고대에는 교수, 직원, 학생사회가 있다. 신문의 역할은 이들 간의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신문은 각 구성원의 목소리나 소식을 담아내는 데엔 충실한 반면, 화두를 제시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묻는 자세는 부족한 것 같다.
지난 호에서는 간간이 소통의 흔적이 엿보였다. ‘1사1촌 운동’ 기사에서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학생들의 ‘농활’과 연관하여 다룬 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총장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대학과 총장>연재기사를 마련하여 다양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대신문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석탑춘추>나 <고대의 창>을 통해 학생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다루고 있지만 깊은 생각을 담아내기엔 부족함이 있다. 

매주 발행되는 고대신문은 고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이다. 안암캠퍼스와 서창캠퍼스에서 매주 월요일, 교수와 교직원, 학생 모두가 접할 수 있는 것은 고대신문를 제외하곤 그리 흔치 않다. 따라서 학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고대신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신문을 통해서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대화가 오고 가야 한다. 그리고 그 대화를 매끄럽게 진행하고 화두를 제시하는 것도 신문의 몫이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면 수많은 잡지와 신문은 독자들의 손을 거쳐 휴지통으로 간다. 독자들이 손수 집까지 가져가는 것은 흔치 않다. 이것은 대부분의 매체들이 ‘볼거리’만 있고 ‘읽을 거리’가 없으며, ‘읽을 거리’는 있어도 ‘생각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고대신문만큼은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담아내 독자들의 손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      

김호경 (정대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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