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은 가장 힘차고 역동적인 색이다. 빨강은 사랑을 상징하는 색부터 시작하여 분노와 복수의 색이 되기도 한다. 종교적으로는 하늘의 성령의 색임과 동시에 악마인 사탄의 색이기도 하다. 또, 신분을 나타낼 때는 중국 공산당의 경우처럼 노동자와 혁명을 상징하는 색임과 동시에 왕과 추기경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물론 이렇게 언급된 색채를 정밀하게 측정·조사하면 모두 같은 색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빨간색 색상 계열일 뿐 전문적으로 분류하면 세분화된 색으로, 색 이름부터 색채 좌표까지 모두 다른 색이다. 

여기서 상식 한 가지를 말하자면, 색상의 뜻(영어로는 휴(hue)로 표기한다)을 살펴봤을 때 분홍과 갈색, 빨강, 크림슨 등의 색은 모두 같은 빨강 색상의 계열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톤으로 분류되는 명도와 채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빨강이 어떤 느낌을 준다.’라고 하면 우리는 원색만을 떠올리는데, 이 경우 빨강 색상 중 특정한 톤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단순하게 빨강 원색만을 생각한다면 색채를 구별하고 느낌을 활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계속해서 빨강 이야기를 하면, 빨강은 ‘어떤 색과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준다. 원색인 빨강이 분홍과 만나면 육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데, 여신 중에서는 아프로디테(비너스)를 상징하고 육체적인 사랑, 유혹 등을 의미한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살색을 강조하고 보색인 파란색으로 배경을 채우고 있다. 이유는 물론 피부색의 빨간 색상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야수파 화가 중 앙리 마티스가 유난히 붉은 색을 즐겨 사용한 것은 강한 정렬과 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여성과 관련된 붉은 색은 주로 의상에서 나타난다. 여성이 빨간색을 입는 경우는 두 가지 인데, 하나는 고전적인 귀족의 상징인 로코코 예술에서처럼 ‘사치와 귀족의 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키치적으로 모방하여 ‘싼거리 여인’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 귀족을 상징하는 빨강은 크림슨이고, 싼거리를 상징하는 빨강은 스칼렛에 해당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빨강은 다른 색보다 톤을 조금만 변화시켜도 색이 주는 느낌이 매우 다른 이미지로 보여지는 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빨강이 길흉화복 중에서 화와 흉을 방지하는 액막이 색으로 사용되었다. 그 속에는 강한 불의 기운으로 악귀를 쫓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동짓날 붉은 색 계통의 팥죽을 먹는 것 역시 몸 속에 강한 기운을 넣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빨강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했을 뿐, 특정한 색명과 색채 좌표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기녀를 상징할 때 홍색을 사용했으며, 이는 서구의 스칼렛과 같은 색으로 의미도 비슷하다. 따라서 오늘날 여성을 상징하는 광고를 만들 때 스칼렛 색의 의미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 채 스칼렛 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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