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을 대비해 지난해 12월 자원봉사자 선발 면접관으로 참여하면서 느낀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너무나 많은 지원자가 응시했다는 점이며, 두번째는 너무나 많은 고급인력이 지원했다는 점이다.

물론 세계적인 축제이기 때문에 관심도가 높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은 했지만 10대 1 이라는 엄청난 응시자가 지원했으며 그 지원자 중 80% 이상이 대학재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것은 놀랄일이 아닐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상당 기간동안 체류한 경험자도 많았으며 1년 미만의 단기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모두가 월드컵을 보면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의욕으로 지원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자원봉사를 지원한 동기와 자원봉사를 통한 본인의 성취감에 대한 질문에서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해관계에 접근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곧 어떤 특정한 요구나 이익을 전제로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선택한 진정한 삶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자원봉사의 근본적인 개념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 줬다.

이것이 곧 오늘날의 한국적인 자원봉사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선진외국에서 지도자의 자질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봉사정신의 근본취지와는 상당부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 자원봉사 부문은 경기 운영을 비롯해, 의무, 방송보도, 수송, 안전, 등록, 영접, 의전, 마케팅사업, 입장권 관리, 우대고객관리, 전산, 통신, 급식, 자원봉사센터, 경기장 시설 등의 매우 다양한 직종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대부분이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월드컵 경기장 내의 직종을 선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1일 자원봉사를 위한 수당은 얼마를 주는가? 라는 질문도 적지 않았다.

본인이 선진외국 여러 나라를 다녀오면서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접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느낀점은 자원봉사자들의 당당함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 자원봉사자들은 자기들이 현재 하고 있는 자원봉사가 자기 스스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며 자원봉사 일 자체를 매우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퇴직한 노인들은 자원봉사를 통해 자신의 능력이 아직도 사회를 위해 쓰여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한국적인 자원봉사는 이해 관계적인 자원봉사가 많아 선진외국에 비해 순수한 면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인정이 많고 예의를 존중하며 남을 돕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으면서 살아왔다.

특히 일손이 부족한 농사일의 품앗이 풍습이나, 마을공동체의 두레, 마을에서 상을 당한 이웃이 있을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같이 슬픔을 나누며 기꺼이 상여를 메고 장지로 떠나는 문화는 대표적인 봉사정신의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적인 봉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원봉사 정신의 근본인 순수한 봉사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수난을 겪어왔고, 특히 최근에는 IMF라는 불경기에 직면하면서 노동기회의 상실과 실업률의 증가로 순수한 봉사정신이 변질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그로인해 사람들의 이해 관계는 점점 더 높은 수위로 나타나게 됐고 나에게 도움이 되고 돈 되는 일이 아니면 자기시간을 내려고 하지 않는 철저한 경제논리의 범주에 집착하게 됐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한국적 자원봉사정신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월드컵 행사는 퇴색돼 가는 순수한 한국적인 자원봉사 정신을 살릴 수 있는, 그야말로 온고지신을 몸소 실천하는 중요한 장이 돼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외국어가 유창하다고 해서 자원봉사를 당당하게 지원했다는 응시자를 많이 봐왔다. 외국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자원 봉사자로서의 순수한 봉사정신과 내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이 바탕돼야 한다는 점을 이 기회에 강조하고 싶다.

인내를 통한 봉사와 희생으로 자기만족을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과 목표의식이 투철한 자원봉사자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원봉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웃과 나누고 서로 돕는 순수한 덕목을 오늘날의 자원봉사에 적절히 접목시킨다면 순수한 한국적인 자원봉사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유휴인력의 활용측면과 주관자의 성과 측면에서 자원봉사의 틀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자원봉사 직무를 세분화시킬 필요가 있겠다. 산업자원 분류표에 의거 직종별, 직무별 노동의 재분배 차원을 명확히 구분해 코드화를 통한 전산관리가 체계적으로 시스템화 돼야 할 것이다.

또, 자원봉사 일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분류된 직종과 직무에 요구되는 자격요건을 연령과 성별 등의 자격요건으로 구체화시켜 자원봉사 희망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분야의 직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한국적 자원봉사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이번 월드컵을 좋은 기회로 삼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저력 있고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사랑과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자원봉사자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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