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들이 쏟아지고, 한국영화 1000만 관객 기록이 올해 상반기에 잇달아 갱신됐다. 100억 원을 넘나드는 제작비로 수백 개의 상영관에서 관객들을 유혹한다. 일제히 똑같은 간판을 걸었다가 1~2주일 만에 일제히 상영작을 바꾸는 영화관이 거리에 즐비하다. 하지만 잠깐만 눈을 돌려 보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관들을 찾을 수 있다. ‘웬만한’ 영화에 조금 질린 관객들에게 ‘1만 명을 위한’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예술 영화, 독립 영화 시장이라 불리는 1만 명 시장은 단관 또는 5개관 미만의 작은 상영관에서 관객들을 맞는다. 1995년 종로 ‘코아아트홀’을 시작으로 ‘예술영화관’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동숭시네마텍’이 문을 열었다. 이어서 광화문의 ‘시네큐브’, 대학로의 ‘하이퍼텍나다’가 개관했다. 현재 상암과 강변의 인디CGV, CQN 등이 운영되고 있다.

▲ <아무도 모른다>의 한장면
국내의 작은 영화 시장 규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작다. 일본 시부야나 뉴욕, 파리 등의 중심가에서 다큐멘터리 상영관 등 특화된 단관 극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100만 관객을 모으는 상업영화 시장은 크게 성장하는 반면, 한국의 작은 영화 시장 규모는 여전히 만 명 단위에 머무렀다. 1995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희생>이 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 당시에 함께 소개된 영화 중 세드릭 칸 감독이 제작한 <권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등 관객 1만 명을 넘긴 영화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점차 작은 영화시장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04년 전국 5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는 3개월 동안 4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평범한 대학생과 다리가 불편한 소녀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일본에서 단관 개봉으로 시작해 흥행에 성공했다. 게이들이 모여 사는 한 호텔을 무대로 한 <메종 드 히미코>는 국내 소규모 개봉에도 불구하고 10만 관객이 이 영화를 찾았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이제는 ‘예술 영화관’, ‘독립 영화관’으로 분류하기에는 모호한 영화관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2004년 말 CGV 강변과 상암은 멀티플렉스에 독립영화관의 개념을 도입했다. 지난해 개관한 ‘필름 포럼’, 올해 씨네 코아 자리에 개관한 ‘스폰지 하우스’와 ‘CQN 명동’ 등은 인디 영화의 메카로 자리를 굳혀나가고 있다.

‘필름 포럼’은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2개관을 운영하며 개봉작과 기획전을 동시에 진행한다. 현재 지아장커 감독이 제작한 <세계>와 세르지오 마카도 감독의 <파라다이스>를 상영하고 있다. 지난 6월 기획 행사로 열린 <미지의 영화 대국 스위스>전에는 관객들에게 총 20편의 스위스 영화를 선보여 좋은 호응을 얻었다.

‘CQN 명동’은 총 5개 관 중 1개 관을 일본영화 전용관으로 운영 중이다. 씨네콰논은 일본의 영화 배급 및 제작 회사로 <쉬리>, <서편제> 등을 수입 배급해 일본에 한국 영화 붐을 일으킨 영화사다. 대표자 재일교포 이봉우 씨가 한국에 직영하는 극장인 CQN은 그 동안 수입제한 탓에 소개되지 못한 일본 영화를 상영한다. 또한 매주 수요일 일본의 문화 행사인 ‘레이디스 데이’를 일부 작품에 적용시키고 있다. 1년에 4~5차례 주로 감독특별전 형태로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CQN만의 특징이다.

▲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를 개봉하면서 잘 알려진 ‘스폰지 하우스’는 압구정에 1개관과 종로에 2개관을 보유하고 있다. 스폰지는 빔 벤더스, 기타노 다케시 등 유명 감독들의 작품을 수입 배급한 업체이다. 스폰지 하우스는 지난 7월에 열린 <일본 인디 필름 페스티벌>과 추석 시즌을 빼고는 매진된 적이 없는 극장이다. 하지만 마니아층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곳은 오는 23일(화)부터 26일(일)까지 종로에서 <인도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높은 자국 영화 점유율이 특징인 인도영화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아직까지 낯설다. 기획단 최지선 씨는 “손님을 끌기 위한 영화제이기 보다는 관객들에게 생소한 영화를 소개하고자 마련한 축제”라며 인도영화만의 매력을 느껴보라고 권했다.

다양한 기획전과 함께 작은 영화관들에서는 감독들이 직접 관객과 만나는 ‘관객과의 대화’로 나름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필름 포럼에서는 1960년대 ‘뉴 스위스 시네마’를 이끌었고,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가는 알랭 태너(Alain Tanner)와 다니얼 슈미트(Daniel Schmid)와의 만남의 자리가 있었다. 지난 10월 <세계> 개봉에 맞춰 중국의 지아장커 감독은 예정에 없던 사인회와 기념촬영을 갖기도 했다. 또한 CQN명동에서는 <천하장사 마돈나>를 제작한 이해영·이해준 감독과의 대화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스폰지 하우스의  관계자는 “작은 영화들의 감독과 관객의 만남은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무대인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시간 제한을 두지 않는 자유로운 ‘대화’다”고 설명했다.

또한 작은 영화관에서는 일반 영화관에서 상영이 끝난 작품들을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는 기회도 있다. ‘하이퍼텍 나다’는 매년 연말 정기적으로 지난 영화들을 스크린에 올리는 행사인 ‘나다, 마지막 프러포즈’를 연다. 스폰지 하우스 또한 지난 10월 ‘Tears in Spongehouse' 행사에서 <번지점프를 하다>, <순애보>, <클래식> 등을 상영했다. 지난 영화를 추억하려는  관객들에게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 영화를 본 후 한 관객은 “집에서 보는 영화와 달리 영화관에서 직접 옛 영화를 접하는 것은 또 색다른 맛이 있다”며 감흥을 전했다.

멀티플렉스 거대한 영화관에서 ‘볼만한 영화’는 다 봤다고 착각하는 당신! 드문드문 객석이 빈 작은 영화관에서 팝콘과 콜라가 아닌 커피를 한 손에 쥐고 ‘조금 특별한’ 영화를 만나보는건 어떨까. 작은 영화관의 영화들이 당신에게 큰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