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통령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기에 해당한다. 이번 대선은 지난 10년간 지속된 양김 정권의 시대를 마감하는 동시에 3김씨가 정치적으로 퇴장하는 결정적인 시기가 된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우리 정치가 지난 60년 간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형성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바람직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에 대한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민주화와 개혁을 반대하는 광범위한 수구연합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들의 도전으로 역사적 진보와 퇴보의 물결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양상으로 대선이 전개되고 있다. 국민들의 무관심도 문제이다. 민주주의의 어원을 희랍어로 풀면 ‘대중의 지배’가 된다. 우리 헌법 제1조 제2항에서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대중의 지배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민들 스스로도 자신을 주권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특히 선거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예고하는 징후라 할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선거를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제도로 간주하거나 국민들의 의사를 형식적으로 수렴하는 도식화된 제도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선거를 기득권층의 도구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관념이다. 선거란 제도는 시민혁명의 결과로서 나타난 제도적 성과물로서,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수립한 혁명의 무기였다. 선거에서 투표용지를 ‘종이돌’(Paper Stone)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유권자들이 정치불신과 냉소주의에 빠져 선거를 기피하고 있다. 과거 대학생은 민주화를 위한 치열한 투사였지만, 지금은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에 매몰되어 심각한 탈정치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독재와 부딪치며 스스로를 헌신했던 학생들이 지금은 투표하는 것조차 버거워할 정도로 변해버린 것이다. 대학에서 부재자 투표소 설치운동을 하면서 부재자 투표를 권유하고 교수들까지 학생들의 선거참여를 촉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생들이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간 실시되는 부재자 투표뿐만 아니라 12월 19일의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많다. 지난 6월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거리응원이 확산되는 것처럼 학생들의 선거참여는 전반적인 참여확산을 가져오게 된다. 게다가 단순한 투표율의 증가뿐만 아니라 투표성향의 변화, 즉 개혁적인 투표를 가능하게 한다. 학생과 젊은 유권자들이 선거에 참여하면 인신공격이나 지역감정을 동원한 낡은 선거가 줄어들고 정책선거가 가능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개혁을 지속시키고 중장기적으로는 정치적 진보를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부재자 투표는 이러한 수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대학 안에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되고 학생들이 부재자  투표를 하게 되면 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져 모든 학생들이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며, 결국 개혁적인 선거가 가능하도록 한다. 따라서 대학 안에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되는 것과 학생들이 부재자 투표를 하는 것은 이번 대선에서 학생들의 선거 참여를 가늠하는 하나의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 부재자 투표 문제를 관장하고 있는 중앙선관위가 대학 안에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는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것이다. 선거관리를 담당하는 중앙선관위로서는 유권자인 국민들이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국민의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높은 정치불신으로 선거 참여를 기피하는 대학생들의 선거 참여를 높이기 위해 일어난 자발적인 부재자 투표소 설치운동을 경직된 법해석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중앙선관위는 애매한 ‘거소’ 개념을 가지고 부재자 요건을 재단할 것이 아니라, 2000명 이상의 부재자 신고를 마친 7개 대학에 즉시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게다가 2천명의 요건을 맞추지 못한 대학의 유권자에 대해서도 이들 학생들이 자유롭게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처음으로 불붙기 시작한 학생들의 참여열기를 차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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