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고독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내 스무 살의 영혼이 감당해야 했던 할머니의 죽음 앞에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이 글에 담고자 한다.』

 남들보다 1년이 더 길었던 대입준비 기간 속에서 ‘대학’은 내 삶의 유일한 비상구인양 날 압박하고 있었다. ‘이승에서도 두 가지 세상이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난 그곳에 가면 나의 사랑과 희망과 내 모든 꿈들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야릇한 속임수에 슬픈 기대감 하나 가슴에 묻어 놓고는 그 날도 그렇게 독서실로 향하고 있었다. 외로이 밤하늘에 뜬 초승달의 따뜻한 환송을 유일하게 받으면서…

할머니 임종 소식이 있던 날도 그 초승달이 날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생활이 가져다주던 역겨운 생활 속에 (난 내 대학생활이 삶에 대한 고민과 그 속에서의 방황 속에 한 인간으로 성숙되어지는 場으로서의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따뜻함을 나누고 싶었고 깊이 있는 삶의 성찰을 친구들과 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날 배반했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철학을 정립할 시기에 그들은 이미 전공서적과 목을 조여오는 현실 속에 성공이라는 족쇄를 너무 빨리 차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도 술로나마 현실을 망각하고 싶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온 것이 촉촉이 젖은 어머니가 전하는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혼자서 서울생활을 하고 있는 난 항상 남해(고향이자 부모님과 할머니가 계신 곳)로 가는 길이 여간 즐겁지 않다. 하지만 그 날 버스 속에서 흘렸던 내 눈물은 아직도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향냄새가 가득한 시골집엔 눈물조차 말라버린 내 아버지의 울음소리와 초점을 잃어버린 채 날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 속에 할머니의 임종 소식보단 아버지의 그 모습에 울고 말았다. ‘어떻게 아버지를 위로해야 하나?’ 하지만 아버지의 지금의 모습은 훗날 나의 모습이었기에 나 또한 억누를 수 없는 슬픔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 울고 말았다. 며칠 전 할머니의 제사가 있었다. 이제 많이 약해지신 내 아버지가 올리는 제사상의 술을 바라보며 왜 그렇게도 눈물이 나던 것일까? 우리네 삶의 순리의 법칙을 조금은 알 것 같지만 그것은 스물 살이던 그때의 나와 5년이 지난 지금의 나도 아직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크나큰 슬픔의 원천이다.

 하루에 한번씩 죽음을 생각한다. 결코 죽음은 슬픈 것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기쁨이다. 흙으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80여년을 삶아가며 갈망하던 우리네의 안식처로의 귀로에서 내 진정 두렵고 슬픔이 있다면 남은 자의 슬픔이 너무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의미를 애써 찾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 저녁하늘 외로이 떠 있는 초승달이 날 바라보는 가운데 이 글을 써 내려가며 다시 흘리는 내 눈물의 소중함과 고향에서 마늘밭 씨뿌리기를 하고 계실 백발의 나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하늘에서 날 지켜주는 할머니가 계심에 아직 난 견딜만  하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