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진부한 말이지만, 대학의 본질적 목적은 교육과 연구이다. 그런데 정치판도 아닌 대학에서 상당수의 총장후보들이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표를 부탁하고 다니는 현상 자체는 매우 기이하다. 세계 어디에도 제대로 된 대학에서 총장직선제를 실시하는 곳은 없다. 외부인사의 총장영입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교협의 직선제는 고대교수들만의 ‘잔치’인 셈이지만, 결과는 그다지 축제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총장직선제와 학내민주주의는 동일시될 수 없다. 직선만이 능사라면 ‘의회’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는 부당한 제도인가?

오히려 대학의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이 모든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구성원의 권한과 한계가 정당하고 명확하게 설정될 때 성립한다. 가령 올해 3월 초 부임한 신임교수들도 취직한 지 일주일만에 실시된 3월 9일의 ‘총장 직선’에 참여했지만, 이를 어느 누구도 ‘민주주의’의 산 증거로 강변할 수는 없다. 도대체 전문가 집단에서 직접투표로 그 조직의 리더를 선출하는 것이 합당한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의사결정구조 하에선 누가 총장이 되더라도 ‘독선적인 행정’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총장직선제가 후보들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교협 규정에서도 명시된 ‘건학이념’에 관한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총장후보의 재산상태와 병역 여부, 그리고 무엇보다 학자로서의 자질과 윤리성 등을 당연히 검증해야할 터인 데, 교협이 동료 교수인 후보들에게 이를 관철시키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고대의 미래를 생각하더라도 교협의 직선제는 종식되어야한다. 교수들의 직접 투표로 총장이 선출되는 한, 경쟁력이 있는 학문분야를 선택적으로 집중 육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선제 총장은 이미 이익집단으로 움직이는 개별 단과대학들의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학교의 재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집단 간의 이해관계는 충돌하기 십상이며 총장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일단 당선되기 위해 무리한 공약을 남발하게된다. 총장으로 선임된 후 공약사항의 실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교수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직원노조까지 학내분규에 끼어 들면 결국 교육과 연구만이 망가지는 것이다. 대학은 이익집단들끼리 경쟁하는 정치판이 아니라, 개별교수들의 독창적인 연구성과나 학생들에 대한 교육의 질로 승부하는 장소이다. 고대가 개교 100년이 다되도록 노벨상의 배출은커녕 제대로 된 학파 하나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교수들이 선거 중심으로 집단화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교수집단화의 한 사례는 최근 일부 교수들의 학번별 서명운동에서도 나타났다. 서명에 참가한 측에서는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했겠는가 라고 변명하지만, 대학사회에서 교수들의 의사표명은 그 방식 또한 품격에 어울려야 할 것이다. 교협의 성명서나 불신임안 등과 같은 의사표현의 방식이 공적인 성격을 지닌다면, 소위 60년대와 70년대 학번 교수들의 성명서는 봉건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촌스러운 행위에 불과하다. 친목회 수준에서도 우스꽝스럽게 비추어질 ‘학번별 교수모임’은 학내 집단화의 수준을 말해준다.

이제 교협은 수명을 다한 직선제를 고집하기보다는 재단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거나, 총장추천위원회의 규정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반면 재단은 교협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하는 조치에 대해 합의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원인사와 징계, 교육내용 등과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에 교수협의회의 대표는 의결권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학내의 모든 구성원은 새로운 의사소통의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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