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하게 시에 잠겨드는, '위트 앤 시니컬'

2021-11-14     조은진 기자

시 낭독회로 독자와 소통하는

나선계단 위 자리한 시집서점

 

동양서림 구석에 있는 나선형의 노란 계단을 오르면 ‘위트 앤 시니컬’로 갈 수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혜화동의 동양서림. 동양서림 2층에는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 자리잡고 있다. 출판 편집자로 일했던 유 시인은 창작 활동에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자 서점을 열었다. 서점의 이름은 대화 중 나온 ‘위트 있는 시인’을 한 시인이 ‘위트 앤 시니컬’이라 부르면서 탄생했다. 유 시인은 “내가 의도한 것과 독자가 받아들이는 것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 시의 매력”이라며 “그런 이유에서 ‘위트 앤 시니컬’을 시집 서점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말했다.

  동양서림 구석에 있는 나선형의 노란 계단은 ‘위트 앤 시니컬’의 유일한 입구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오르다 보면 시집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린 책꽂이에는 1500여 권의 시집이 꽂혀 있다. 책꽂이를 향해 걸려 있는 여러 개의 조명은 아늑한 느낌을 주고, 난방이 잘 돼 있어 초겨울 추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에게 온기를 제공한다. 막연히 시가 읽고 싶은데 아는 시인이나 시집이 없어도 괜찮다. 책장 곳곳에는 추천 시집과 그 이유가 담긴 포스트잇이 독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 시집은 보물, 그리고 축복. 언젠가 필요할 거예요. 데려가세요.” 신해욱 시인의 <생물성>을 소개하는 문구다.

 

서점 주인의 시집 추천사가 서점 곳곳에 붙어있다.

  마음에 드는 시집을 골랐다면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시를 감상해보자. 나선계단 하나 올랐을 뿐인데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온 것 같다. 난방기 앞에 달린 풍경(風磬) 소리도 이따금 경쾌하게 들려온다. 한참 시를 읽는 데 집중하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면 시를 사랑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서점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소리다. 

 

사가독서에서 시 창작 강의와 시 낭독회 등 위트 앤 시니컬 자체 기획이 열리기도 한다.

  서점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사가독서’라는 공간이 나온다. 평소에는 독자들이 자유롭게 시를 읽는 공간으로 쓰이는 이곳은 이따금 시인과 독자를 잇는 가교가 된다. 사가독서에서 시인들은 시 창작 강의를 열고 시 낭독회를 하며 독자와 소통한다. 독자들과 시를 나누려는 시도는 온라인에서도 이어진다. ‘위트 앤 시니컬’에서는 유튜브를 통해 시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주요 콘텐츠로는 두 명의 시인들이 시를 읽어주는 ‘십만이와 시인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시 애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초대석’ 등이 있다.  

  다양한 행사와 유튜브 운영은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들어 쉽지 않다. 하지만 유 시인은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시도하는 것을 즐긴다”며 “작은 서점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나서서 해보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글 | 조은진 기자 zephyros@

사진 | 조은진·강동우 기자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