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교가가 만들어졌나]진리탐구와 애국심 고취에 도움됐으면
본지 72호 (1955.5.30) 故윤이상 선생 기고문
저는 역사(歷史)있는 고대(高大)의 교가(校歌)를 작곡(作曲)함의 광영(光榮)을 느끼고 작사자(作詞者) 조지훈 교수(敎授)의 청탁(請託)을
쾌락(快諾)했습니다. 작곡에 앞서 작사자(作詞者)와 수차(數次) 내용(內容)과 기분(氣分)에 관해 숙의(熟議) 했습니다. 교가의 본질(本質)로서
첫째 고상(高尙)하고 함축(含蓄)이 있어야 할 것, 둘째 고대(高大)의 전통(傳統)인 ‘힘’의 표현(表現)이 있어야 할 것, 셋째 가사가 가진바
학교(學校)를 설명(說明)한데 대해 충분히 배의(配意)할 것, 넷째 작곡자(作曲者)인 저의 의사(意思)로서 되도록 한국 정취(情趣)가 떠오르게
할 것, 이런 것 이었습니다.
여태까지의 경험(經驗)으로 보아 교가란 이렇게 구유(具有)할 조건(條件)이 많기 때문에 이렇고도
끊임없이 학생에게 매력(魅力)을 줄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란 용이(容易)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이상(以上)의 조건 아래 세 가지의 노래가
작곡되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유 총장 댁에서 총장님을 위시(爲始)하여 몇 학장, 그 밖의 몇몇 교수와 작사자 조교수(趙敎授) 이렇게 여러분이
모이신 가운데 작곡자인 저의 자창(自唱)을 듣고 고르신 것이 이번의 발표(發表)된 교가입니다.
이 교가는 위에 말한 네 가지 조건
중에서 제가 보건데 첫째와 둘째에 치중되어 있고, 넷째의 한국적인 요소는 희박(稀薄)하다 하겠습니다. 곡조(曲調)는 공명(公明) 정대(正大)
장엄(莊嚴) 그러면서도 넓은 포용력(包容力)을 내포하고 있는 C장조(長調)를 택(擇)했습니다. 4/4박자는 방정(方正)하고 무게가 있습니다.
속도는 의식(儀式)때에는 행진곡(行進曲)보다 조금 느리게, 운동(運動)때나 행유(行遊)때는 빠르게 불러 ‘리듬’을 강조(强調)하여 ‘힘’을
자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약간(若干) 전문적인 견해(見解)도 섞여서 곡조의 구성(構成)을 설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곡은
3부분(部分)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북악산~”부터 “~ 빛을보라”까지, 둘째는 “겨레의~”부터 “~전당이 있다”까지, 셋째로는
후렴입니다.
제일(第一)부분(部分) 변격(變格)소절로 시작하는 “북(北)”소리는 중강, 4도 상향(上向)하여 주음(主音)으로
“악산(岳山)”을 부르는데 강도(强度)는 “악(岳)”음(音)에 있고 이 때문에 처음부터 듣는 사람에게 압도감(壓倒感)을 주도록 되는데 더욱
최초(最初)의 동기(動機)(전곡(全曲)을 형성하는 초두(初頭)의 2소절)는 4도 6도 4도 5도 이렇게 음절의 도약(跳躍)이 심한 것은 마치
북악산의 험준(險峻)한 산맥을 표현한 것입니다. “안암의 언덕에~”로서 최초의 동기에 유사하나 온건하게 발전한 새동기는 약간 다정하면서 다음
“퍼져나는 빛을 보라”의 순차(順次) 진행(進行)을 이행(移行)하는데 이 순차진행은 자욱히 떠오르는 분위기를 연상(聯想)시킨다.
제 2부분 “겨레의”의 삼연음부(三連音符) 어느 장렬(壯烈)한 투쟁(鬪爭)과 힘의 행진을 예고(豫告)하고 이의 순차상향해서 다음 소절의
주음의 연속강조, 또 그 다음의 동기에서 동형(同形)반복의 형으로 점차(漸次) 최고음인 E음에서 향하게 되는 일렬의 4분음부군은 지대(至大)한
목표를 향하여 고대의 깃발아래 전진(前進)하는 젊은이들의 정열(情熱)과 투지(鬪志)를 나타내고 다음이 “공든탑(塔)”에서 “전당(殿堂)이 있다”
까지는 이 곡의 최강(最强)음이요 겸(兼)하여 모두 최고음들로써 여기 이곡에 절정(絶頂)이 존재(存在)합니다.
제 3부분 후렴인데
이는 어느 후렴이나 마찬가지로 앞의 긴장을 완화(緩和)시키고 새로운 기분으로 결론을 맺는 곳 입니다. 즉 “고려대학교”가 두번씩 4번 나타나는데
동기가 혹사(酷似)한 것은 고려대학을 강조한 것이요. 또 8분음부분의 순차상하향은 학생으로서의 멋을 뜻한 것 입니다. 처음의 대동기의 “마음의
고향”은 중약음으로 다정(多情)하고 회포(懷抱)에 잠기는 듯 부드럽게 또 나중의 “영원(永遠)히 빛난다”는 한소리, 한소리의 최강음으로 영원한
장래(將來)를 축원(祝願)하는 것처럼 포부와 희망(希望)에 넘쳐 종결(終結) 지을 것입니다.
교가를 부르는 것은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發露)인 것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교가의 참뜻을 간직하고 이것을 아끼고 사랑하여 부르되 학교에 대한 사랑과 동일히 할 것은
물론입니다. 이 교가가 현재나 장래의 여러분의 학교에 대한 감회(感懷)와 항상 같이할 수 있기를 작곡자로서 바라는 바이오, 또 옛날에 헤브라이
백성들이 노래로써 그들의 유일의 신(神)에 통하듯 이 노래가 여러분의 진리(眞理)의 탐구(貪求)와 애교심에 통하여 길이 좋은 반려(伴侶)가
되었으면 이상에 없는 희망이겠습니다.
<고대신문> 72호,
1955.5.30
작곡자(作曲者) 윤이상(尹伊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