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분야를 다양하게 키우는 중장기 계획 마련해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형준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인터뷰

2023-05-08     조경준 기자

기술혁신 이끌 고급인재 부족해

중소·중견기업 인력 공급 방안 필요

인식개선 통해 학생 관심 늘려야

 

 

  정부는 최근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관련 학과 정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지난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삼성전자와 함께 과학기술원 3곳(광주·대구·울산)에 5년간 총 500명의 인력양성을 목표로 하는 계약학과를 신설했다. 별도의 학과를 신설하지 않고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 한해 기존 학과 정원을 한시적으로 늘려 채용연계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계약정원제도 지난 3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내년 도입을 앞두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반도체 관련 학과 654명을 포함해 총 1829명의 전국 첨단분야 학과 증원을 승인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형준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일련의 반도체 인력양성 정책에 대해 “국내의 다양한 반도체 분야 기업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국 반도체 인력 위기 수준은

  “인력 부족은 항상 있었지만 최근 들어 심화됐습니다. 학령인구 감소나 이공계 기피로 양적인 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고급인재의 공급 부족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변화 주기가 빠르다 보니 기업은 이에 대응할 인재가 필요한데, 석·박사 진학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죠. 학부 졸업생은 기업에서 연구를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 실질적으로 연구개발을 이끄는 팀의 리더는 박사급 졸업생입니다. 대만은 반도체 기술을 높이 평가하다 보니 이공계 기피 현상도 덜하고 반도체를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미국도 가장 첨단의 기술 수준을 유지하며 유학생도 많고 IT분야 임금도 높아 한국에 비해 위기가 심하진 않습니다.”

 

  - 반도체 계약학과가 늘어나고 있다

  “계약학과로 인해 대학의 연구개발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기업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계약학과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필요한 인력을 미리 확보할 수 있기에 계약학과를 선호하고 투자하는 것이죠. 또 상위권 대학 위주로 계약학과가 만들어지다 보니 우수 인재를 기업으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학교 역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이 선택했다는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죠. 최근엔 석·박사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학부 단위에서부터 계약학과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저학년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업은 학부생뿐 아니라 연구개발을 이끌 대학원생까지도 데려올 수 있게 되죠.”

 

  - 채용연계 교육과정을 더 늘려야 할까

  “계약학과나 계약정원제 등 채용연계 교육은 분명히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 대기업을 위한 것들이에요. 중소·중견기업 인력 공급을 위한 방안도 필요합니다. 반도체는 한 회사만 잘한다고 되는 산업이 아니에요. 반도체 소재, 소자, 회로설계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에서 사람이 늘어나고, 이들을 함께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국가 반도체 산업이 전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부족한 이유도 국내 팹리스(Fabless,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들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수탁생산)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애플이나 퀄컴 등 해외 글로벌 팹리스의 수요에만 집중했죠. 국내 기업들은 자사의 설계를 생산해줄 서비스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반도체 인재들이 국내 팹리스로도 진출하고 글로벌화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전부 대기업으로 빠진다면 장기적으로 이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채용연계 교육과정을 통해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은 좋지만 장기적인 계획도 분명히 함께 가져가야 합니다. 미국이 잘하고 있는 부분도 스타트업을 꾸준히 성장시키는 것이에요. 스타트업의 좋은 아이디어를 지원하고 성장시키는 정책이 나와야 하고, 이들의 기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도 함께 필요합니다.”

 

  - 비수도권 반도체 교육 격차 좁히려면

  “지금도 하고는 있지만, 비수도권의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지역별로 특화된 기술 분야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역의 여러 대학이 연계해 인프라를 지원받고 특정 분야 기술에 특화된 반도체 제조공장을 만든다면, 이를 이용하기 위해 사람들도 몰리고 자연스럽게 연구개발이 늘어나면서 기술 발전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비수도권 국립대학에 권역별 반도체공동연구소를 설치하는 것도 하나의 사례죠. 하지만 지나치게 지역 균형만을 강조하다 보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각 지역마다 연구 장비도 많이 필요할뿐더러, 비슷한 연구를 수행할 경우 효율성도 떨어질 수 있죠. 지역 대학별로 반도체 거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들을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함께 필요합니다.”

 

  - 반도체 인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학생들이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반도체라는 분야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합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말고도 반도체를 전공한 학생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무궁무진합니다. 반도체 인재들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고 반도체 기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늘려 성공 사례도 많아진다면, 반도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늘어날 것이고 자연스레 이를 기피하는 현상도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글 | 조경준 기자 junalist@

사진 | 문원준 사진부장 mondlic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