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의 서재]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기 위하여
삶에 속도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속도로 나아가야 하는가? 소설 <느림>은 그 제목부터 질문에 아주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 빠른 것이 곧 정답이 되고 명예가 곧 권력이 되는 현대사회에 이 200페이지가량의 소설은 ‘속도’와 ‘느림’의 미덕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어느 프랑스 호텔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시작된다. 아내 베라는 프랑스 도로 위에서 하루 몇 명의 사람이 죽는지 열변하고,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의 시야에 옆 차선의 자동차가 들어온다. 자동차는 왼쪽 지시등을 초조하게 깜빡이며 추월의 기회만 엿보고 있다. 백미러를 힐끔거리던 ‘나’는 이를 보고 한탄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느림>의 주인공은 총 세 명이다. 프랑스 성 부인과 꿈같은 하룻밤을 보낸 중세의 기사, 타인의 관심에 목말라 있던 20세기 지식인 뱅상, 그리고 화자이자 저자인 ‘나’. 쉴 새 없이 교차 서술되는 세 일화는 저마다 다른 속도를 따르는 인물들과, 그들이 가지는 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겉보기에는 통속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 끝에 아이러니하게도 한 가지 진부한 질문이 뒤따른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행복의 속도는 무엇인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는 절대 정의이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돈이 모자란 건 아닌지 확인해 보라.’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는, 안타깝게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숫자가 곧 행복으로, 행복이 곧 숫자로 치환되는 시대. 우리는 발붙이고 있는 현재를 담보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눈이 멀어 산다. 그런 빠름이 미덕이 되어버린 오늘날에, 느리게 집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소설은 모든 사람이 ‘더 빠른 것’, ‘더 효율적인 것’을 외치는 사회에서 경주마처럼 달려 나가는 우리의 발목을 한 번쯤 붙잡아준다. ‘느림’의 즐거움을 전해주면서. 미래가 아닌 지나온 길을 기억하자고.
기술은 우리에게 ‘빠름’을 주었지만 어쩌면 ‘느림’을 앗아갔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느리게 걸으며 과거를 곱씹기보다 오토바이 위에 올라 제 한 몸을 속도의 흐름에 맡기길 택했다. 모두가 지름길을 찾아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세상 속에, 하루 정도는 <느림>과 함께 오늘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어떨 때는 빠르게, 어떨 때는 느리게. 그럼, 언젠가는 나만의 보폭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홍채희(문과대 일문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