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원의 현주소가 다른 대학이 꿈꾸는 미래”
과기원, 1인당 교육비 서울대 능가
희비 가른 건 재정지원과 자율성
기술 개발 넘어 전망대 역할까지
우수 인재의 비수도권 대학 기피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비수도권 과학기술원(과기원)의 인기는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새다. 이들 대학은 수도권 인재를 지방으로 유치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은 어느새 소멸 위기인 지방대의 생존 지향점이 됐다. 전준(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정부에서 전국 대학들에 여러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개혁이 완수됐을 때의 목표 지점으로 제시되는 것들이 사실 카이스트가 지난 몇십 년간 해왔던 것들인 경우가 되게 많다”며 “무전공 확대, 연구 중심 대학 모델 등 다른 대학들의 미래는 카이스트가 개척해 왔던 부분”이라 말했다.
안정적 재정 지원, “혜택 체감 중”
지방에 위치해 입지적 한계가 명백한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을 선호하는 이유론 학생 한 명에 지원되는 교육비가 압도적인 점이 꼽힌다. 2021년 기준 4대 과기원과 포항 공과대는 서울대에 비해 학생 1인당 교육비가 1641~5197만원 이상 높다. 4대 과기원은 ‘한국과학기술원법’을 비롯한 4개의 특별법에 따라 설치·운영되고 있어 정부는 의무적으로 이들 대학에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인 덕에 교육부가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이들 대학의 지원을 전담하는 점도 예산 배정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김소영(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과기정통부 소속 대학은 4개밖에 없기 때문에 대학 당 지원금이 크다”고 설명했다.
GIST를 제외한 3개 과기원의 재학생은 직전학기 성적이 2.7/4.3 미만인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무상 등록금을 적용받으며, 매달 13만원에서 최대 33만원을 재학 4년 동안 지급받는다. 학생들은 혜택을 체감하고 있다. 서울 성북동에서 나고 자란 김예원(DGIST 기초학부23) 씨는 “다가오는 여름 학기엔 친구들과 UC 버클리에서 수업을 들을 예정”이라며 “토익 점수가 800점만 넘으면 파견 대학 수업료와 기숙사비 등을 전액 지원해줘 부담이 적다”고 전했다.
자율성 보장이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교육과정 운영에 폭넓은 자율성을 보장받은 부분 역시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이 단기간에 학부 교육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 4개 과기원은 학과 편성 및 운영 등에 있어 고등교육법 및 그 시행령을 적용받지 않는다. 김성엽 UNIST 공과대학장은 “학사 일정 등 필수적인 부분에 한해서만 고등교육법을 준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4개 과기원은 모두 무전공으로 입학한 후 향후 전공을 선택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전선애(DGIST 기초학부23) 씨는 “당초 기계공학을 전공하길 희망했지만 수업을 들으며 컴퓨터공학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며 “4년간 수업을 듣고 졸업할 때 전공을 선택하는 구조였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국립 대학임에도 이사회와 같이 사립대의 장점을 취한 것 역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김성엽 학장은 “국립대는 총장과 학장으로 구성된 교무위원회에서 모든 걸 결정하고, 관련 예산도 정부에서 세심하게 쪼개 지원하는 시스템인 반면 사립대는 총장 선임권 등을 가진 이사회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 재단이 얼마큼 학교에 예산을 투입하는지에 따라 학교 운영의 결과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지방에 세계적 연구 인프라 이식해
UNIST의 등장으로 울산의 고등교육 인프라는 눈에 띄게 변화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울산대라는 틀 위에 수준급 대학원 과정이 생긴 것이다. 울산에 연구개발이라는 개념이 들어온 것 역시 UNIST가 지역에 기여한 부분이다. 김성엽 학장은 “이전엔 울산에서 R&D를 말하면 현대중공업 등의 기업 연구소만 생각했다”며 “UNIST를 통해 ‘울산이 산업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선진 기술에 대한 이해와 R&D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울산시와 시의 각 기관에서도 R&D의 개념이 도입되고, 지역 고등학생들이 참여하는 과학기술 캠프와 같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이 지역사회의 요구에 맞춰 특화된 분야의 연구 인프라를 고도화한 점 역시 지역에서 이들의 역할이 확대되는 이유다. AI 혁신 거점도시인 광주에 위치한 GIST는 지역 수요에 반응해 2019년 AI 대학원을 설치했다. DGIST는 대학원에 뇌과학과를 운영하며 부설기관인 한국뇌연구원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박지수(DGIST 대학원·뇌과학과) 씨는 “평소 한국뇌연구원 신경회로소속 연구실에서 근무하며 인공 뇌에서 신경 신호가 분화되는 과정을 연구하다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온다”며 “뇌과학에 특화된 연구 인프라 덕에 1학년임에도 귀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은 우수한 연구개발 인프라를 지역 산업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배영(POSTECH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연구된 내용을 산업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경로가 다양하게 존재한다”며 “포항제철의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캠퍼스 내 함께 운영하며 철강뿐 아니라 첨단 재료 및 소재 관련 사업에 중요한 자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경준 기자 aigo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