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학교 살려야 지방 소멸 막는다

수도권·지방 간 초중등 교육 격차

2024-06-04     이경준 기자

정부, 지방 31개 지역에 집중 투자

학교들 묶으면 못 가르칠 과목 없어

온라인 교육으로 영남·호남 잇기도

 

지난달 30일 폐교인 대구 죽전중의 운동장이 썰렁한 모습이다. 소멸 위기를 겪는 지방에선 폐교와 폐교 직전인 소규모 학교가 늘고 있다.

 

  초중등 교육에서 수도권과 지방 간 교육 격차는 수도권대와 지방대 간 격차보다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학생들이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학과 달리 초중등 교육은 의무교육이기 때문이다. 주거지에 따라 학교 배정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지역 간 교육 격차의 확대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 교육 결과의 불공정을 야기한다.

 

  지방이 원하는 대로 교육 규제 푼다

  소멸 위기를 겪는 지방의 교육 환경이 나날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지방의 공교육 강화 해법으로 과감한 규제 개혁을 약속했다. 지난해 11월 추진계획이 발표된 교육발전특구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 6개 광역지자체와 25개 기초지자체가 제1차 시범지역으로 지정된 가운데 정부는 교육발전특구에 한해 지자체가 건의한 교육 관련 규제 완화를 폭넓게 수용하고 재정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다.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을 운영할 지자체들은 교육청, 지역 대학, 지역 기업과 협력해 지역별 특성에 맞춘 교육 혁신 정책들을 추진 중이다. AI 혁신 거점도시인 광주광역시는 AI 영재고 설립을 시범지역 추진계획에 담았다. 광주와 같이 각 지자체는 교육발전특구에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정책을 담아 지역 발전의 계기로 삼겠단 구상이다.

  돌봄 확대를 통한 양육부담 경감 등 공통으로 거론되는 정책도 있다. 고대신문이 교육부의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 지역별 제안(2024)’을 분석한 결과 31개 지자체 중 30개 지자체가 돌봄 교육 확대를 시범지역 추진 계획에 명시했다. 1차 시범지역에 지정된 부산의 경우 내년부터 초등학교 1~3학년 학생 중 희망자 모두 방과후학교와 돌봄 프로그램을 통합한 늘봄학교를 다닐 수 있다. 부산시는 향후엔 늘봄학교의 희망자 전원 수용 대상을 0세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로 확대할 예정이다. 박종필(전주교대 초등교육과) 교수는 “초등학생들은 방과후 태권도, 피아노 학원을 갔다 부모님들이 퇴근할 때에 맞춰 집에 간다”며 “초등학생의 사교육은 진학이 아닌 돌봄을 위한 사교육인 만큼 늘봄학교가 늘면 사교육비가 줄 것”이라 말했다. 교육부 차관을 지낸 김재춘(영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늘봄학교의 확대는 맞벌이 부부의 일과 가정 양립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교육발전특구가 정부의 교육 개혁 과제인 늘봄학교를 추진할 경우 성과로 이어지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지방 6개 대학이 기업과 함께 개발한 민관 협력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이 대표적 예다. 늘봄학교에선 아이들이 최대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학교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만큼 양질의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김한성(가천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방과후 교육은 정규 시간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을 더 풍부하게 다룰 필요가 있는데 대학, 기업과의 연계는 학생들이 꿈을 탐색하고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리라 본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자율형공립고(자공고) 2.0을 통해 비수도권에 수도권 부럽지 않은 명문고를 육성하겠단 청사진도 발표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울릉고 등 교육환경 취약 지역 위주로 선정한 40개 자공고에 기존 일반고 운영 예산 외 5년간 매해 2억원씩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교육과정 역시 자율형사립고·특수목적고에 준하는 수준으로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이 계획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종사자와 협력하는 K-POP 특성화 학교, 지방의료단지의 연구 자원을 활용한 생명공학 특성화 학교 등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8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하는 부산 국제 K-POP 고등학교 설립 등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자칫 이색 학교의 난립이 우려되는 대목이지만 전문가들은 합리적인 선에서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성하(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자공고를 운영하는 방식이 지자체, 대학, 기업 등이 협약을 체결해 운영하는 것이고 협약 이행을 위해 ‘협약운영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으로 보아 각 지역에서 자율학교의 ‘난립’은 구조적으로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공고 2.0에선 학교가 주도해 새로운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자율성이 부여된다. 이러한 이유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원 역시 산업과 기술에 대한 다양한 역량이 요구된다. 자공고 2.0에 선정된 나주고는 한국전력·한국에너지공대와 ‘전력·반도체’ 과정을 개발해 학생들에게 가르칠 예정이다. 이러한 과목은 기존 교육대·사범대를 졸업한 교원 자격 소지자가 가르치기 힘든 영역인 만큼 정부는 자공고 2.0에 한해 교원 자격 소지 여부에 상관없이 산업 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소규모 학교 지원이 해답

  자공고 설립 외에도 인구소멸지역의 소규모 학교에 대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 방안으로 공동교육과정이 꼽힌다. 소규모 학교는 여러 교과목의 담당 교원을 고루 갖추기 어려운 만큼 특정 교과의 수업을 원하는 여러 학교의 학생들을 모아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김성천(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학교 간 협업이나 ‘넘나들며 배우기’와 같은 학교를 넘어선 배움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한 학교에서 연극이라는 과목을, 다른 학교에서 영화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이를 상호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성 교수는 “공동교육과정은 작은 학교의 장점과 특권은 누리되 여러 학교가 함께 모여 학교가 작아 어쩔 수 없는 불리한 부분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경북에선 지난해 기준 15개 학교가 ‘인근 지역 소규모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운영’에 참여했다. 경상북도 교육청은 참여 학교를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학교 밖 지역사회 구성원이 소규모 학교의 교육을 적극 지원하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김성천 교수는 “위기감을 느낀 지역일수록 마을교육공동체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교육 때문에 타지역으로 아이들을 뺏길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있는 것”이라 전했다. 구체적 방안으로 지역별 특색교육과정의 개발이 주문된다. 전하람(전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역사회의 자원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교육력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선 학생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이해하도록, 마을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지도록 하는 지역 교육과정의 개발·보급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마을을 통한, 마을에 의한, 마을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학생들의 정주 의식이나 애향심, 시민의식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진로교육만 해도 지역사회엔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어른들이 존재하고, 그들과 아이들을 만나게 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다.

 

  온라인 기반 교육 흐름 따라가야

  소규모 학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교육과정을 도입해도 학교 간 물리적 거리는 여전하다. 에듀테크를 활용한 원격 교육의 확대가 보완책이 될 수 있다. 김성천 교수는 “에듀테크가 만능은 아니지만, 학습할 의지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지역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에듀테크를 활용하자 소규모 학교를 연결할 수 있는 범위 역시 급격히 늘어났다. 경상북도 교육청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의 소규모 학교를 연결하는 것 외에도 올해 경북의 16학급을 300km 이상 떨어진 전남의 16학급과 원격 화상 수업으로 연결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전남·경북 각 10학급에서 참여 학급수를 60% 늘린 것이다.

  정부 교육정책의 변화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도 지방 교육 현장에서 에듀테크의 활용 확대는 필수적이다. 내년엔 학생들이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이수한 후 학점을 인정받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다. 학령인구가 줄며 신규 교사 임용이 충분하지 않은 지방에선 고교학점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온라인 학교를 선택하고 있다. 전라남도 교육청은 목포여고 과학동 등을 리모델링해 내년 3월 전남 온라인 학교를 개교할 예정이다. 전남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이수기준에 도달하면 학점을 부여받을 수 있다.

  다만 온라인 공동교육과정과 온라인 학교 모두 원격 교육의 특성상 일방향 교육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정책적 고려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전하람 교수는 “대안적 교육환경에서의 교육이 전통적 교육방식의 효과를 넘어서기 위해선 교수자와 학습자 간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쌍방향의 소통 환경을 가능하게 하는 교수법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한성 교수는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과목을 적극 개설하고 학생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2022 개정교육과정에선 모든 학생의 학습 기초로 디지털 소양이 처음 포함됐다. 이영희(단국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공교육에서 에듀테크 활용도를 높이려는 이유는 단순히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교육이 학생들의 개별화 교육과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학생 개개인에 맞춤화된 교육을 위해 추진 중인 AI 디지털교과서 등은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안이라는 분석이다.

 

  이동성 교수는 “혁신 교육에선 수능에 나오는 걸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현 입시 제도론 아이들이 대학에 잘 못 갈 수 있다”며 “혁신 교육을 하고 있는 전주고 선생님을 만나 보니 혹시라도 아이들이 수능을 못 볼까 봐, 수시에서 불리할까 봐 전전긍긍하더라”고 전했다. 지방 초중등 교육이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같은 방법 외에도 대학입시·교육행정 전반에서 근본적인 제도 개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글 | 이경준 기자 aigoya@

사진 | 하동근 기자 hdng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