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학생 느는데 ··· 학생사회 진입장벽은 여전

2024-10-05     김민서·이태희 기자

1년 새 유학생 884명 늘어

선거 일정부터 공약까지 다국어 표기

세계 고대, 인적 교류가 열쇠

 

 

  미디어학부 24학번 유학생 조모 씨는 “수는 늘었지만 외국인 학생은 여전히 학내 선거나 행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총학생회(회장=김서영, 이하 ‘서울총학’) 및 각 기층단위의 학생사회 운영은 여전히 한국어·한국인 중심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학생 증가세에 맞춰 여러 정책 변화가 시도되지만, 외국인 학생들이 변화를 체감하려면 획기적 혁신이 필요하단 의견이 나온다.

  올해 기준 입학생 3명 중 2명이 외국인인 자유전공학부에선 밀착 지원을 위해 학생회 회원 분류 기준으로 국제회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회의록 및 선거 공약의 외국어 번역본 제공도 권고·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정보 접근 힘들고 소외감 느껴

  김동원 총장은 지난달 10일 국제화 캠퍼스 선포식에서 외국인 친화 캠퍼스 비전을 발표하고, 외국인 학생들이 손쉽게 학사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의 국제화 기조에 따라 고려대 서울캠 외국인 학생은 지난해 1708명에서 올해 2592명으로 약 51.7% 급증했다. 올해 출범한 글로벌자율학부, 내년 출범하는 미디어대학 산하 글로벌엔터테인먼트학부까지 외국인 학생만으로 구성된 학부·학과도 늘 예정이다.

  그러나 외국인 학생들의 자치 활동 참여를 위한 여건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자율학부는 외국인 학생으로만 구성됐다는 점이 무색할 만큼 서울총학과 학부 공지를 모두 카카오톡을 통해 한국어로 전달하고 있다. 박인걸(朴仁杰) 글로벌자율학부 24학번 대표는 “대부분의 외국인 학생은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거나 자주 확인하지 않는다”며 “공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해결책으로 학생사회 내 공지를 외국어로 전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지난 7월 7일 열린 제12차 중앙운영위원회 정기회의에서 김서영 서울총학생회장은 “국제화에 발맞춰 총학생회 공지의 영어 번역본을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선 외국어 공지의 범위를 공지뿐 아니라 선거 관련 정보로 늘려야 한단 의견이 나온다. 선거 일정 및 투표 방법 등을 외국어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일정, 투표 방법, 투표소 위치 등 세부 정보를 담은 카드뉴스 및 공지를 영어로 번역해 제공했다. 관련 현수막과 투표소 내 자료 역시 영문을 함께 적었다. 다만 온라인과 달리 오프라인 투표지에는 외국어가 표기되지 않았다.

  후보자 정보와 공약도 외국인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외국어로 전달해야 한다. 조모 씨는 “외국인이 선거 공약집과 같이 한국어로 써진 긴 글을 읽는 건 매우 어렵다”고 했다. 난도 높은 공보물 읽기가 또 하나의 시험으로 다가오는 탓에 선거 자체에 관심이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지민 서울총학 재정사무국장은 “지난 서울총학생회장단 선거 땐 각 선본으로부터 영문 번역 핵심 공약을 받아 별도의 영문 전용 유니보트 시스템을 생성했다”고 했다. 한편 연세대 서울총학생회(회장=함형진)는 정책자료집 영문본을 필수로 제출하고 여러 언어로 공고를 전달하도록 하고 있다.

 

  언어 허들 낮춰 참여 끌어내야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 외국인 학생이 학생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스즈키 사야(鈴木紗弥, 미디어24) 씨는 “행사 등 자치 활동의 운영진은 대부분 한국인”이라며 “행사 운영에 외국인 학생들이 참여한다면 이질감을 완화하고 행사에 대한 외국인 학생들의 관심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유학생회(회장=사비나 악페로와, Sabina Akperova)는 “외국인 학생들이 선거에서 투표한다고 해서 대학 생활과 학생 자치 활동에 포함되기는 어렵다”며 “외국인 학생들이 직접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자율학부·글로벌엔터테인먼트학부 신설로 외국인만의 학생회가 필요해졌지만, 학생회를 구성하는 외국인 학생 간 동질감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한정선 국제대학장은 “외국인 학생들을 다 같은 외국인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영어권 학생들뿐만 아니라 유학생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계 학생들까지 아울러야 한다”고 했다. 박 대표도 “외국인으로만 이뤄지는 신설 학과 학생회는 일시적으로 학교가 선거를 돕고 멘토 등을 배치해 학생회 운영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학과의 학생 대표자가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등 의결기구에 참여하는 만큼 회의체 운영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외국인 대표자가 알아듣기에 지나치게 어려운 한국어로 회의가 진행되면 회의 운영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김서영 서울총학생회장은 “장기적으로 학생회가 외국인 학생들을 최대한 포용할 수 있도록 회의에서 자주 사용되는 주요 용어들에 대한 번역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중앙운영위원회 등에서 논의된 실시간 통역 시스템 배치는 어려울 전망이다. 김 회장은 “회의 시간이 매번 달라지고 특정 용어는 명확한 번역이 어렵다”며 “학생 자치 영역에서는 국제 회의체처럼 동시통역을 활용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외국인 학생이 학생사회에 안착하려면 밀착 교류가 중요하다. 고려대 언어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한 왕총(王聰, 문과대 언어21) 씨는 “한국인과 만나 공부하고 놀면서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배울 수 있었다”며 “진정한 우정을 만들 수 있던 기회는 한국인 학생과의 교류”라고 말했다. 한국어 수준에 따라 교양 과목을 개설하거나 서로의 언어 능력을 향상하는 소모임을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정선 학장은 “글로벌자율학부는 1학년 이후 다른 학과로 이동하기 때문에 1학년 세미나라도 소수 정예로 구성해 교류하게끔 돕는다”고 했다. 황인찬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자유전공학부 1학년 세미나 과목은 논문 경연이나 학술대회 등 자유전공학부 학생회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이수 요건”이라며 “학술대회는 한국인에게도 어려워 외국인 학생을 위한 이수 요건이 신설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 김민서·이태희 기자 press@

일러스트 | 박은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