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의 서재] 우정이라는 난폭한 희망
‘무엇이 첫사랑과 첫 우정을 구별하는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절친한 친구 베로니크 캉피옹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이다. <슬픔이여 안녕>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두 사랑 이야기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된 사강에게 사랑과 우정은 ‘잎담배를 마는 얇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했다.
사강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우정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나의 삶을 돌아봤을 때 내게 사랑은 절대적이고 숭상할 만한 것이었지만, 우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디선가 ‘사랑’이야말로 젊음의 특권이라고 배웠고, 사랑만이 나를 인격적으로 성장시킬 것이라 기대했다.
무엇이 우정을 사랑에 비해 초라한 것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독점욕일 것이다. 누군가의 유일한 지위를 단번에 점유하는 사랑이라는 특수한 경험은, 우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도록 온 신경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사강과 캉피옹의 편지를 보고 있자면, 독점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우정만이 줄 수 있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꿈꾸게 된다. 더 이상 사랑과 구분 지을 수 없을 만큼 애틋하고 아름다운 언어들이 편지지를 채우고, 둘만의 암호와 그림들이 빼곡한 글자를 감싸고 있다. 이들에게 멀어짐은 있었지만, 이별은 없었다. 사강이 죽은 후에도 사강은 캉피옹에게 편지 속 글씨와 추억으로 남아 관념적 영생을 누린다.
‘무언가 말하고 나면 내일은 다른 걸 생각할 거고, 그렇게 말한 걸 후회하겠지요… 이런 건 어떨까요, 프랑수아즈를 떠올릴 때면 저는 어떤 방을 생각해요, 밤새도록, 위스키도 마시지 않고 잠들지도 않은 채, 모든 것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던 그 방.’
- 사강을 떠올리는 캉피옹의 인터뷰 중-
연인 간의 사랑을 얘기하는 사강의 소설 속 이야기보다 이 둘의 편지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건 왜일까. 사강의 소설 속 인물들과 달리 이들에게는 파멸도 불륜도 없다. 존중과 이해와 더 이상 우정인지 사랑인지 구분 짓기도 어려운 감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사랑과 우정은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탄생하는 동등한 감정일 뿐이다. 우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사랑만을 예찬하는 것은 인생의 커다란 행복으로부터 나를 격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나 느린 인생에서 우정이라는 난폭한 희망을 품고 누군가의 사강이 되기를 꿈꾼다.
태서연(문과대 철학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