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FILX] 찬란했던 과거를 존경하는 방법

高FILX는 고대인이 애정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2024-11-04     성문현(글비대 영미학23)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별점: ★★★★☆

한 줄 평: 지나갔지만 괜찮아, 아름다웠으니까


  과거를 무력하게 그리워할 것인가, 아니면 기억하고 존경할 것인가? 웨스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자신 있게 답을 내놓는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한 소녀는 읽는 책의 저자가 젊은 시절 여행 중 들은 이야기를 구술한다. 현재의 관객이 소녀와 함께 과거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인 컨시어지 무슈 구스타브는 예술, 교양, 명예 등 고리타분한 가치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시간과 때에 맞지 않게 고급 향수와 시 낭송을 고수하는 등 그 가치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진부함이 영화의 사건들을 촉발하고 작은 일을 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무슈 구스타브는 로비 보이이자 주인공인 제로와 유대감을 쌓아나가며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마침내 무슈 구스타브는 제로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서먹했던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으로 변한다.

  하지만 때는 명백한 전시 상황이다. 전쟁의 폭력에 제로의 삶이 이미 한번 파괴되었듯 무슈 구스타브 역시 비슷한 방식을 통해 과거의 인물로 남는다. 떠들썩한 모험도 잠시, 제로는 이름처럼 다시 혼자가 된다. 호텔 역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연스러운 수순이라지만 한때 무슈 구스타브의 자존심이었던 호텔이 초라해진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 시점에서 호텔은 제로와 닮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겉모습은 볼품없어지고 과거의 가치도 무의미해진다. 소중한 사람들도 곁에서 떠나가는 와중에 순간에나 거머쥘 수 있는 물질적인 부(富)는 더 무상할 뿐이다. 그럴수록 좋았던 과거가 아름답게 느껴질 수밖에. 늙은 제로는 홀로 호텔에 남은 채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물 흘린다.

  영화의 복잡한 서술구조와 독특한 캐릭터들이 최종적으로 전달하는 주제는 바로 노스탤지어다. 제로의 이야기는 동화 작가에 의해 후대의 관객에게로 계승된다. 그래서 분명 유쾌한 영화임에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고 나면 그의 쓸쓸함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제로와 노스탤지어를 공유하면서 그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웨스 앤더슨은 이렇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통해 과거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존경을 드러낸다. 비록 이야기의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영화가 허무함만을 전달하고 있지는 않다. 호화로운 전성기 속, 자신만의 신념으로 환상을 지켜내던 무슈 구스타브의 과거에 대한 애정과 존경 또한 관객의 마음속에 깊게 남을 것이다.

 

성문현(글비대 영미학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