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가 된 두 번째 커리어, 평생교육으로 직업 역량 강화해야

2024-11-18     윤태욱 사회부장

교육부 예산 중 평생직업교육은 0.08%

평생교육사 없는 기관 30% 육박

“수도권 편중된 기관 분산해야”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헌법 제31조 제5항은 모든 국민이 전 일생에 걸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육개발원이 밝힌 지난해 평생교육 참여율은 32.3%에 그쳤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대학 진학률은 최고 수준임에도 평생교육 참여에선 중위권을 맴돈다. 

 

 

  평생교육 필요 커져도 미진한 참여율

  지식·산업 사회가 가파르게 성장하며 평생교육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국제미래교육위원회 보고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교육을 위한 새로운 계약(2021)’에서 ‘평생 동안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의 보장’을 양대 기본 원칙으로 꼽았다. 이범수(평생교육전공) 교수는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시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인에게 전 생애에 걸친 교육을 요구한다”며 “삶에 직결되는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평생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유민희(평생교육전공) 교수도 “평생교육은 사회·경제적 불확실성과 디지털 혼란을 마주하는 사회에서 더욱 전면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2023~27년 사이 6900만 개의 일자리가 8300만 개의 새로운 직종으로 대체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대수명도 약 84세로 1970년 대비 22세가량 증가했다. 지금의 중장년층에게 평생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현영섭(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평균적으로 첫 직장을 그만두는 시기가 49세인데, 은퇴 희망 연령은 70세를 넘는다”며 “직장을 나간 뒤에도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고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 평생교육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아직 참여율은 미진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성인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32.3%로 5년 전 대비 21.6% 감소했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202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 직업 관련 평생학습 참여율은 OECD에 가입한 34개 회원국 중 18위에 머물렀다.

 

  고령화 대비해 지원 확대 요구돼

  올해 교육부 본예산 95조7888억 원 중 평생·직업교육 관련 예산은 1조2162억 원으로 전체의 1.27% 수준에 그쳤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평생·직업교육 예산이 전년도 대비 1139억 원 줄어 전체의 1.05%로 떨어졌다. 리상섭(동덕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백세시대’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임에도 대학을 졸업한 이후 약 70년의 삶에 대해선 교육적 투자가 적다”며 “현재 교육부 예산은 더 떨어질 곳도 없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현영섭 교수도 “평생교육 강국으로 불리는 국가는 평생교육이 교육 예산의 5% 정도를 차지한다”며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가 평생교육 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적은 수치”라고 말했다.

  저조한 예산 지원은 평생교육의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평생교육사와 평생교육을 진행하는 교·강사들에 대한 지원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문미혜(평생교육전공) 교수는 “평생교육 강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은 고품질 교육서비스 제공을 어렵게 하는 주원인”이라며 “이들의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 체계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리상섭 교수는 “최저시급 수준의 강의료는 평생교육 개발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기관의 미흡한 프로그램 관리도 지적된다. 평생교육법 제26조 제1항에 따라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을 제외한 평생교육기관은 한 명 이상의 평생교육사를 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 ‘국가평생교육통계조사 결과 발표(2021)’에 따르면 2021년 평생교육기관의 21.8%가 기관 내 한 명의 평생교육사도 배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영섭 교수는 “국내 평생교육기관 중 상당수는 평생교육사도 두지 않는 ‘허수’ 기관”이라며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할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교육기관으로 등록해 세제 혜택만 받는다”고 전했다.

  평생교육은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일반행정과 교육청 단위의 교육행정으로 이원화 돼있어 행정 체계의 비효율성을 지적받기도 한다. 이범수 교수는 “지역 평생교육의 진흥을 위해선 광역자치단체장과 교육감, 기초자치단체장과 교육장 간 적극적 협력관계가 형성돼야 하지만, 실제론 책임 회피가 발생하는 측면이 크다”며 “분리된 책임과 예산을 일원화한다면 효율적인 평생교육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영섭 교수는 “소관 기관인 교육청에서도 초·중·고등학교 관리에만 집중하다 보니 평생교육기관에 대해선 소홀한 측면이 있다”며 “감사·제재와 같은 실질적인 감독 권한의 법적 근거가 미비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평생교육법과 평생교육진흥기본계획 등을 통해 평생교육의 저변 확대와 품질 제고를 위한 제도적 틀은 마련했지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리상섭 교수도 “지난해 평생교육법이 개정되며 읍면동 단위까지도 평생학습관이 설치됐을 만큼 제도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실제 평생교육 현장이 법령의 요구 수준을 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남은 과제는 평생교육 접근성 제고

  평생교육 취지를 실현하고, 참여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선 직업 재교육형 교육이 방안으로 제시된다. 현재 평생교육은 △학력 보완 △성인 기초문해 △직업 능력 △인문교양 △문화예술 △시민참여 총 6개 주제로 분류된다. 지난해 직업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전체의 30.7%였다. 리상섭 교수는 “문화예술 분야 교육도 중요하지만, 창업, 직업재교육 등으로 분야를 확대해야 기존 평생교육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며 “중장년층 학습자 대상의 평생교육은 두 번째 커리어를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범수 교수도 “평생교육을 취미·여가 활동으로 한정된 복지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편향된 시각”이라며 “평생교육에 대한 인식이 성인학습자의 직업적 역량 강화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평생교육의 지역 격차 해소도 시급한 과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평생교육기관 5029곳 중 66.6%에 달하는 3348곳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현영섭 교수는 “비수도권 지역은 이미 산업구조가 열악한데, 직업개발을 위한 평생교육까지 부족하게 공급되고 있다”며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수준이 떨어지는 평생교육의 지역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식적인 학위나 졸업장의 취득을 목표로 하지 않는 비형식교육 연평균 자가부담학습비 역시 서울이 39만 원으로 가장 높다. 최저치를 기록한 전남을 두 배 이상 앞섰다. 문미혜 교수는 “평생교육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국민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습자의 다양성을 정책에 반영하고 기존 프로그램 간 중복을 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학력·소득 격차도 타파해야 한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의 직업관련 목적 비형식교육 참여율은 20.2%에 달했으나 중졸 이하의 경우 7.5%에 그쳤다. 월가구소득 500만 원 이상의 경우 참여율이 36.1%인데 반해, 150만 원 미만의 가구에선 21.2%의 참여율을 기록했다. 리상섭 교수는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계층에겐 평생교육보다 당장 임금을 버는 일이 중요할 것”이라며 “평생교육 바우처 확대 사업 등을 통해 계층 격차 해소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유민희 교수도 “지역 격차, 소득 수준, 학력에 따른 평생교육 접근성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소외 계층 맞춤형 프로그램을 확대·개발해 평생교육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전했다. 

  평생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과 참여율 증진을 위해선 결국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다. 이범수 교수는 “교수의 안식년 제도와 유사한 평생학습 휴직제를 도입해 평생교육 진흥을 위한 제도 마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평생학습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윤태욱 사회부장 yoonvely@

일러스트|송민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