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꿈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냉전'(冷箭)은 숨어서 쏘는 화살이란 뜻으로 고대신문 동인이 씁니다.
스물세 살 때인가, 한 외국인 친구가 나에게 ‘너는 꿈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했는데, 그가 ‘왜 꿈이 없냐’고 되물었다. 허겁지겁 말을 지어냈다. ‘아니 사실 나는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나랑 잘 맞는지 모르겠고, 어쩌고저쩌고.’ 한심하다는 시선과 등이 뜨끈해지던 당혹감이 기억에 선하다. 내가 내린 모든 선택이 실패로 끝났기에 더 움츠러들었던 것 같다. 수능 성적에 맞춰 들어온 과는 끔찍했고, 기자가 돼볼까 하고 들어간 학보사는 적성에 안 맞았다.
7년이 지나 스물아홉이 되어 그 기억을 곱씹어 보니 다른 의미로 열 받는다. 아니, 그 나이면 꿈이 없을 수도 있지! 애초에 나이와 상관없이 꿈이 필수도 아닌데. 오히려 ‘꿈’이 족쇄가 될 수도 있는데.
대학 시절 내내 꿈을, 정확히는 직업을 확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하지만 되고 싶은 게 없었다. 어문계열 대학생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한정적이었다. 채용공고를 수집하려 해도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정하질 않았으니 선택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다 갔다. 4학년이 되어서야 고등학생 때 꿈꿨던 광고기획자가 돼 보자고 마음먹고 광고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차게 실패했다. 광고기획자가 됐지만,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산업군의 조직문화와 업무가 도저히 나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퇴사하지 못했던 건, ‘어떻게 찾은 꿈인데’란 생각 때문이었다. 광고회사 취업으로 꿈을 시작했으니, 그 꿈의 틀에 나를 꾸겨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끔찍했다. 매일 퇴근하고 집에 오면 울었다.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잃어가던 중이었다. 결국 1년 만에 퇴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직업을 선택하는 건 오히려 쉬웠다. 상품기획자는 내 꿈의 리스트에 들어 있지도 않았던 직무였지만 우연히 취업에 성공했고, 해보니 적성에 맞았다. 기획은 재밌었고, 커뮤니케이션이나 일정 관리는 힘들지만 할 만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알게 되자 꿈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지에 집중했다. 그렇게 2년 일하다가 상품기획자 일에 한계를 느끼고 퇴사를 했다. 회사 사람들이 ‘커리어 골이 뭐길래 퇴사하냐’는 질문에 ‘꿈은 없고요, 다른 일도 해보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한 달 뒤면 이십 대가 끝난다. 지난 십 년을 돌아보니 꿈에서 해방됐던 이십 대 중후반이 오히려 덜 불안했던 것 같다. 오늘을 살다 보면 미래는 어떤 그림으로든 그려져 있다. 구상화가 아니라 추상화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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