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FILX] 네 기억의 지도
高FILX는 고대인이 애정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파수꾼>
별점: ★★★★☆
한 줄 평: 어느 하나 간절하지 않은 마음이 없다.
아들이 죽었다. 아버지는 그 이유를 모른다. 그래서 죽은 아들 기태와 친했던 친구들을 찾아가 기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입을 통해선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다. 대신 영화는 우리를 기태가 죽기 이전의 시점으로 직접 데려간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그 시간대가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아주 행복해 보이는 평범한 세 친구의 모습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그들 사이의 공기는 서늘해져 있다. 이러한 비선형적 플롯은 관객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타이밍을 조절하는, 일종의 영화적 서스펜스를 위한 장치일 수 있다.
이때 관객에게 중요한 질문은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다. 영화를 다 보고 에피소드들을 재배열하고 나면,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답에 어렴풋이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답을 믿어도 되는 걸까? 정말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우리가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아닐까?
기태가 자살했다.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일,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일, 그래서 원상태로의 복구가 필요한 일이다. 반면 사건은 복구될 수 없다. 사건은 그 세계에 낙인처럼 새겨져, 사건이 한 번 벌어지면 결코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건 이후는 사건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둘을 잇는 유일한 다리는 기억이다. <파수꾼>은 사건 이후의 시점에서, 사건 이전을 기억하는 영화다. 해명하고 밝히는 영화가 아니라, 기억하는 영화다.
앞서 나는 ‘이 영화가 우리를 사건 이전의 시점으로 직접 데려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영화가 우리를 사건 이전의 시점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 이전에 대한 그들의 기억 속으로 데려간다고 말해야 한다. 이 영화 자체가 그들의 기억이다. <파수꾼>의 플롯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희준과 동윤이 기태를 기억하는 방식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 혼란이 그들의 기억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때의 일을 짐작하거나 판단하는 대신 그 아이들의 기억 속 혼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혼란을 같이 겪어야 한다. 그것만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세다.
채윤서(경영대 경영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