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은 국문학도, 음악에 정착하다
황인경(국어국문학과 05학번) 교우 인터뷰
1905 동기와 밴드 전기뱀장어 결성
솔직한 가사로 공감 이끌어
관객과 함께 만드는 공연
황인경(국어국문학과 05학번) 교우는 혼자서 밴드 활동을 한다. 2011년 고려대 중앙락밴드 동아리 1905에서 만난 김예슬(지구환경과학과 05학번) 교우와 밴드 전기뱀장어를 결성해 EP 앨범 <충전>으로 데뷔했지만, 재작년 오랫동안 함께한 멤버들이 모두 탈퇴하면서 1인 밴드가 됐다. 올해로 16년 차 싱어송라이터가 된 황인경 교우는 한 번도 ‘음악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누구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할 거예요. 그 말을 따라 하고 싶은 일을 좇다 보니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에요.”
로망이었던 음악, 직업이 되다
호기심 많고 즉흥적인 성격이던 황인경 교우는 진로를 자주 바꿨다. “유년 시절 첫 번째 꿈은 과학자였어요. 부모님께 ‘과학상자’를 사달라고 조르거나 과학 경진 대회에 나가 라디오나 무동력기를 조립하는 걸 좋아했죠.” 고등학교 진학 후엔 국문학에 관심을 두며 시인을 꿈꾸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 소설 지문을 읽는 게 재밌었어요. 김영랑 시인의 시를 다이어리에 필사하거나 직접 시를 쓰기도 하며 ‘시인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과학자와 시인 외에도 법조인, PD 등 다양한 진로를 희망했지만 음악만은 취미로 남을 줄 알았다.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연주했고 통기타부 부장도 하면서 ‘음악가로 살면 멋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렇지만 음악가로 사는 삶은 로망에 불과했고, 음악으로 돈을 번다는 건 더더욱 생각한 적 없어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황인경 교우는 입학 직후 중앙락밴드 동아리 1905에 지원했다. “고등학교 통기타부 바로 옆에 밴드부가 있었는데, 왠지 밴드 음악이 더 어렵고 멋져 보였어요. 대학생이 되면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했었죠.” 포지션별로 1명만을 뽑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남자 보컬이 된 황 교우는 동아리 공연으로 다양한 무대 경험을 쌓았다. “처음엔 긴장도 많이 했고, 관객과 호흡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무대에 서서 당황했던 경험들이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키워준 것 같아요.” 황 교우는 1905 활동을 통해 조직 생활도 배웠다. “자유롭기만 했던 개인 생활과 달리 팀으로 활동하면서 타인과 함께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팀, 조직에서 어떤 것들이 좋고 나쁜 요소인지를 알 수 있었죠. 조별 과제 외엔 여럿이 활동할 일이 없으니 조직 생활은 동아리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 중 하나였어요.”
밴드 전기뱀장어의 시작도 1905부터였다. 2009년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던 김예슬 교우의 제의로 황인경 교우가 보컬을 맡으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작곡 경험이 전혀 없던 황 교우는 인디밴드 활동 경험이 있던 김 교우와 함께 곡을 써나갔다.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감을 익혔죠. ‘퍼피’처럼 제가 주도적으로 쓴 곡들도 발매하게 되면서 ‘내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무대 경험도 부족했지만 김 교우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성장했다. “코드 몇 개 치면서 일렉기타를 만져본 정도인데 바로 현장에 투입됐으니 늘 서툴렀어요. 공연하면서 예슬이한테 *앰프 **노브 조절도 도와달라 하고, 톤 괜찮은지 들어봐 달라고 하면서 그때 그때 배웠어요.”
부모님은 아들의 음악 활동을 반기진 않았지만 고향을 떠나 밴드 활동에 매진한 그를 막을 순 없었다. ‘우선 직업을 갖고 음악을 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할 뿐이었다. 황인경 교우는 부모님 제안에 구직 활동도 해봤지만, 힘껏 노력하진 않았다. “구직 원서는 딱 2장 넣었어요. 서울우유 지원서엔 ‘인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잘 일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포부를 썼고, 자소서나 이력서엔 통기타, 밴드 동아리 등 음악 이야기밖에 없었죠. 다른 직업을 갖기보단 순수하게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황인경 교우는 전기뱀장어 보컬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2012년 소속사 계약을 맺고 정규 1집을 발매하기 전까진 자신의 직업이 음악가라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음악은 평생 가는 취미일 뿐, 생계를 책임질 만한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EP <최신유행>으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소속사 ‘사운드홀릭’과 계약하며 그의 직업은 음악가가 됐다. 취미가 일이 됐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았다. “영화를 만들든, 글을 쓰든, 음악을 하든 순수한 즐거움을 좇아서 창작하는 거잖아요. 그 일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늘 처음 하는 것처럼 즐길 수 있다고 믿어요. 저는 아직도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곡 작업이 즐겁거든요.”
‘하고 싶은 말’ 담아 작사
직접 작사·작곡을 하는 황인경 교우가 곡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였다. 데뷔 초 만든 곡들은 대부분 황 교우의 자화상과 같다. “저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음악이 찌질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전공 수업에서 문학이 인간의 삶, 사회와 깊이 연결돼 있음을 배운 황 교우는 음악을 만들 때도 점차 시야를 넓혀 사회의 이야기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 탄핵 정국과 관련해 음악인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집회 현장에서 동료들과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학교, 광장, 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혐오와 갈등, 연대와 화합은 혼자가 아닌 다수의 이야기잖아요. 그런 것들을 표현하면서 보람을 느끼죠.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제 음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요.”
황인경 교우가 쓰는 가사는 특유의 문학적 표현으로 유명하다. “날 두드리는 감촉들이 모랑모랑 피어나 / 하얀 구름이 깨끗해진 빨래처럼 걸리네” ‘고양이와 까치를 위한 티타임’의 가사처럼, 황 교우는 가사에 순우리말이나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매주 직접 쓴 시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저는 말보단 글이 편하고 시는 가사보다 형식이 자유로워 작사보다 즐거울 때도 많아요. 시나 가사를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더 잘 쓰고 싶어져요.” 황 교우는 다양한 문학적 표현을 활용하되 독자, 청자가 가사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문학적인 표현과 모호한 표현은 달라요. 겉보기에 어렵고 멋있다고 다 아름다운 표현은 아니니까요. 문학적 표현도 생활어처럼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해요. 무게를 잡기보단 가벼운 생활어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어요.”
황인경 교우는 작곡은 ‘외모’, 작사는 ‘성격’으로 비유한다. “잘생긴 사람을 보면 눈길이 가지만 사람을 대할 때 직관적인 아름다움만 보진 않죠. 내면이 깊은 사람이면 더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대중은 가사보단 멜로디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 좋은 가사를 고민하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단 한 글자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사를 읊조리거나, 되뇌거나, 곱씹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앨범 소개 글도 마찬가지지만,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써요. 효율적이고 유용한 것만 좇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관객과 친구 하는 ‘홀로뱀장어’
황인경 교우는 전기뱀장어 멤버 김예슬 교우와 이혜지 씨가 탈퇴하며 2023년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멤버들의 공백이 컸지만, 황인경 교우는 새 멤버를 구하는 데 신중했다. 그에게 밴드 멤버는 무대 밖에서도 함께하며 창작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음악적 지향은 물론이고 삶의 결도 맞아야 해서 쉽게 구할 수 없었어요.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지만, 음악하는 동료들이 많이 생겨서 그들에게 조언을 듣고자 합니다.” 1인 체제라 좋은 점도 있다. 멤버가 있다면 모든 결정은 회의를 거쳐야 하지만, 1인 체제 아래에선 회의 없이 신속한 결정이 가능하다. “음악이나 기획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멤버들과 의논하면 과한 것은 배제하고 무난한 것만 남아요. 혼자라 할 일이 많지만, 간섭 없이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건 1인 체제만의 장점이죠.” 모험을 즐기는 황 교우의 성격과도 잘 맞다. “즉흥적인 편이라 될지 안 될지 반반이면, 일단 해보고 나서 뼈저리게 깨달아요. ‘안 되는구나!’ 하고요. 하지만 독특한 기획이 실현됐을 때 호응을 얻기도 해요.”
황인경 교우는 홀로 무대에 서는 대신, 관객과 함께 공연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관객이 직접 공연에 참여하며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황 교우가 떠올린 것은 전공 수업에서 접한 살판이었다. “한국판 서커스인 살판처럼 관객과 뒤섞여 ‘얼씨구’하는 공연에 호기심과 동경이 있었어요. 지금도 공연 기획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객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예요.” 황인경 교우가 기획한 공연 ‘베스트 프렌즈 포에버 페스티벌 2024’, ‘엣큥, 지각이다…!’ 모두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전자에선 공연 중 사전에 수합한 관객 사연을 소개하거나, 관객이 무대에 올라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서브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각이 컨셉인 후자에선 늦은 관객이 지각 사유서를 제출해야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관객들이 짜증을 내기보단 즐겁게 지각 사유서를 작성하더라고요. 공연 후반에 ‘오늘 늦은 분들 사유서 한 번 읽어볼게요’ 하며 사연을 소개해 관객도 공연의 일부가 됐죠.” 2023년 정규 3집 <동심원>을 발매한 뒤에도 꾸준히 관객과 만났다. 황 교우에게 관객은 “외로운 항해 속에서 용기를 불어넣는 친구”다.
그는 곡이나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일상에서 얻기도 한다. 매번 다른 음악가와 무대에 올랐던 ‘친구가 되자’ 공연도 친구와의 대화에서 출발했다. “친구와 대화하던 중 오래 활동하다 보니 주변에 밴드가 많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새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의미에서 다른 음악가를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공연을 기획했어요.” 황인경 교우는 올해 공연은 줄이고 음반 작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전기뱀장어의 2장을 어떻게 써 내려갈지 늘 고민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도전으로 채우려 한다.
황인경 교우는 ‘여행자의 마음’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저도 제가 음악가로 살 줄은 몰랐거든요. ‘내 인생의 가능성은 무한대’라고 생각하고, 여행지를 둘러보는 마음으로 세상을 폭넓게 보면서 관심사를 찾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세상을 둘러보면 내가 앉고 싶은 자리가 있을 거예요. 그곳에 조금 앉아 있다가 또 다른 곳을 가 볼 수도 있는 거죠.” 황 교우는 우선 캠퍼스부터 100%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도서관 뒤 벤치에 앉아서 연애도 하고, 농구장 가서 공도 던져보면 좋겠어요. 열람실이나 강의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고등학생처럼 제한된 동선으로 다니지 말고, 아름다운 캠퍼스 곳곳을 누비시길 바랍니다.”
*앰프(amplifier): 악기에서 나온 신호를 증폭시켜 소리를 청취할 수 있게 만드는 장비.
**노브(knob):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 음량이나 음향 효과 값을 조절하는 둥근 손잡이.
글 | 정혜린 기자 byye@
사진 | 김준희 기자 hee@
사진제공 | 황인경 교우